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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기복이 Jun 08. 2022

직장인의 서랍엔 뭐가 있게요?

약 밖에 없어요

오 제 몸을 살려 주세요



나는 약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었다. 감기가 걸리거나 아니면 특별한 질병 때문에 병원에 가서 처방약을 받아먹는 경우가 아니면 평소에 약국에서 상비약을 사다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한 달에 한두 번은 약국을 꼭 들르는 것 같다. 어느새 내 단골 약국도 생겼다. 지금껏 사본 적 없던 상비약도 많이 사고 , 감기에 걸려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대충 약국 가서 종합 감기약을 사 먹는다. 그래, 진정한 직장인이 되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건강을 월급과 바꾸는 일 일지도. 











아파도 출근해서 쓰러져야지


얼마 전 오미크론이 정점을 찍던 그때 나도 심하게 아픈 적이 있었다. 가족 중 한 명이 확진을 받았는데 그리고 이틀 뒤인가 갑자기 목이 엄청 아프기 시작하더니 증상이 발현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자가 키트로 해도 음성이었다. 신속항원을 해도 음성이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아파 죽을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었다. 난 음성이니 회사에 나가야 했다. 설상가상이라고 그때 또 일이 많아서 매일 야근을 해야 했다. 죽을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들어가 쉬고 싶었지만 이미 팀원들도 릴레이 확진이 이어지고 있어서 나까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그들의 일이 나에게로 왔다. 일은 배가 늘었는데 여전히 몸은 나을 생각을 안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냈는데도 낫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PCR을 하러 갔다. 하지만 결과는 음성이었다. 


너무 서러웠다. 아파 죽겠는데 계속 아니라고 하니 쉬지도 못하고 일은 일대로 다 해야 하고 그렇게 억울하고 서러울 수가 없었다. 직장을 다니며 이렇게 아팠던 적도 없지만 아픈데도 꾸역꾸역 출근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너무 힘들고 슬폈다. 급한 대로 약국에 가서 감기에 해당되는 약만 5만 원어치를 샀다. 회사를 나가야 하니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이것저것 비상약을 다 사다 보니 뜻밖의 약값을 쓰게 되었다. 그래도 그 약들 덕분인지 겨우겨우 출근해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약 이것저것 5만원어치



직장이 사람 잡는다


내가 평소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약이 있다. 두통약과 소화제다. 나는 원래 두통이 있어서 처방약을 타다 먹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병원 갈 시간이 없고, 가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약국에서 나한테 잘 맞는 진통제를 사다 먹는다. 원래 내 두통은 처방약이 아니면 듣지 않는 두통이지만 몸도 내가 이제 병원 갈 시간이 없는 건지를 아는지 요즘은 일반 진통제에도 꽤 잘 듣는 편이다. 


다른 하나는 소화제다. 한 달에 몇 번은 꼭 먹는 것 같다. 어쩔 때는 일주일 내내 먹은 적도 있다. 나는 원래 소화제를 먹은 적이 많이 없었다. 체한 적도 거의 없다. 속이 불편할 때는 매실 한 컵 타 마시면 쭈욱 잘 내려갔다. 그런데 요즘에는 수시로 속이 더부룩하고 체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점심식사를 시간에 맞춰 엄청나게 스피디하게 먹는다. 나는 엄청 천천히 먹는 편인데 지금은 내 본래 속도의 몇 배는 빨리 먹고 있다. 잘 씹지도 않고 넘기는 것 같다. 일단 식사 환경도 너무 불편하고 그 상태에서 빨리까지 먹다 보니까 속이 편할 날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어쩌겠나. 눈치가 보이는 것을. 내 속이 불편한 것을 택하는 게 훨씬 낫다. 그게 습관이 되다 보니 집에서도 회사에서 먹는 것처럼 빨리 먹게 되었다. 항상 급한 게 어느새 몸에 밴 것 같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비타민이며 오메가-3며 온갖 종합영양제를 잔뜩 서랍에 두고 먹는다. 그만큼 체력이 달린다는 것을 자신들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딱 하나만 집에다 두고 먹지만 그마저도 까먹을 때가 많다. 그냥 가끔 챙겨 먹는다. 주위에서는 꾸준히 먹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먹나 안 먹나 피곤한 것은 똑같은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괜히 더 건강해져서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보다 시름시름 해져서 빨리 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건강은 퇴사하는 날 찾아오겠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몸이 점점 망가져가는 것을 스스로 너무 잘 느낀다. 느낌이 팍팍 온다. 늘어나는 옆구리살과 앞으로 볼록 튀어나온 뱃살. 그리고 눈 밑에 점점 진해지는 다크서클까지. 그런데 그런 몸에게 내가 해줄 건 없다. 그저 숨을 들이쉬고 참으며 배를 집어넣는다던가. 아주 밝은 컬러의 쿠션을 두들겨 다크서클을 가린다던가. 가끔 옆구리살을 쿡쿡 찔러 얼마나 더 쪘는지 확인하는 것 외에는 별다르게 할 게 없다. 


한 번은 일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자고 운동을 끊어본 적도 있었다. 6개월에 70만 원을 내고 끊었는데 절반도 못 갔다. 쉬는 날에라도 가보려고 했지만 주말은 침대에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이 물에 젖은 파카처럼 무거웠다. 게다가 운동 강좌가 오전만 있어서 주말까지 그 시간에 맞춰 움직이기에는 내가 그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건강은 퇴사 뒤로 미뤄 두기로 했다.




TO. My body

퇴사할 때까지만 버텨줘......


운동을 포기한 요즘 건강을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은 '나쁜 것 안 먹기'이다. 평소에 식사 대신 빵 하고 과자, 초콜릿을 그렇게 먹었는데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신 귀찮더라도 제대로 밥을 챙겨 먹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라면을 안 먹으려고 한다. 퇴근하고 나면 간편하고 맛도 있는 게 라면이라 자주 먹었는데 그 습관도 없애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퇴사하고 건강을 다시 챙길 수 있을 때까지만 버텨주길 바라며 오늘도 약과 방울토마토로 내 몸을 살살 달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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