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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흰자에 사는 사람

노른자를 탐내는 흰자

by 감성기복이
<주의>
이 글은 계란 흰자에 사는 사람이 노른자에 살고 싶다고 투덜투덜 대는 글입니다. 투덜이 스머프를 싫어하시는 분들에게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글에는 교훈이 단 한 톨도 없으며 다소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흰자 중에 흰자에 사는 사람


서울은 노른자. 경기도는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나의 해방 일지>를 틀어놓고 고개 푹 숙이고 밥을 먹다가 이 말을 듣는 순간 귀가 뜨이며 반찬통에 고이 기대어진 작은 핸드폰 화면을 쳐다 보았다. 바로 '와 대박!' 하고 머리를 딱 치며, 누가 생각해냈는지 참 비유도 찰떡 같이 했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씁쓸해졌다. 왜냐면 내가 바로 그 계란 흰자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드라마 속 동네처럼 뒤에는 산이 있고, 한참을 걸어 나가야 버스 정류장이 있고, 그 앞에는 밭인지 논인지, 하여간에 허허벌판이 있는 그런 오지에 살고 있다. 걸어 걸어 정류장까지 가도 버스가 오질 않는다. 한 시간에 한대 다니는 것도 있고 30분마다 오는 버스도 있다. 이마저도 주말에는 하루에 1대, 5대 정도만 다닌다. 그나마 자주 다니는 게 딱 하나 있는데 내가 가는 곳과는 상관없는 버스다. 난 한 시간에 1대 있는 그 버스를 타야 한다. 그러니까 이 동네에선 버스도 운이 좋아야 타는 거다. 어디 그것뿐인가. 겨우 버스를 타도 역까지 나가려면 1시간은 가까이 걸린다. 매일매일 전쟁을 치른다. 택시도 잘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택시를 못 잡으면 그날은 지각하는 거다.





흰자에 갇혔다


나는 약속을 싫어한다. 당연히 회식도 싫다. 같은 경기도 안에서의 약속도 싫다. 집이 멀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 퇴근 하면 해방이 아니라 이제 집에 갈 걱정을 해야 한다. 특히나 밤늦게 사람도 다니지 않는 어두운 거리를 혼자 걸어 들어가려면 굉장히 무섭다. 옆에는 고물상 밖에 없어서 뭔 일이 나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 가끔 택시를 타고 오면 택시 아저씨들이 항상 나에게 여기는 너무 위험하니 절대 혼자는 다니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여기 사는 이상 방법이 없는 것을.


집에 멀다 보니 나는 서울에 잘 놀러 나가지 못한다. 강남 한번 다녀오려면 왕복 6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래서 어쩔 때는 문명사회와의 거리감을 느낀다. 쉬는 날에도 어디 나가지 않고 꼼작 없이 집에 있다.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일단 어디 나가려면 거의 시골쥐 서울구경 느낌이라 생각만 해도 진이 빠지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좁은 방에 갇혀 있는 게 답답도 하지만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노른자를 탐내는 흰자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역시 역세권에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주변에 없는 게 없다. 마트도 있고 편의점도 있고 세탁소도 있다. 난 집에 들어오면 아무 데도 갈 데가 없는데. 마트도 없고 편의점도 없고 카페도 없다. 도보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새벽 배송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시내에 나가면 필요한 것은 무조건 다 사 와야 한다. 만약 갑자기 급한 게 있다면 한 시간을 버스 타고 나가서 사 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이사 가는 것이다. 하루빨리 치안도 좋고 생활도 편리한 곳으로 가고 싶다. 하지만 이번 생에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나도 노른자에 가고 싶지만 노른자는 저세상에서 가야 할 것 같다. 노른자 입성의 꿈을 버린다면 내가 살고 싶은 도시는 송도다. 센트럴 파크 야경에 반했다. 사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고 사진으로만 봤다. 흰자라도 송도 같은 흰자라면 살 맛 날 것 같다. 나는 아마 매일매일 밤 산책을 나갈 것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오늘도 흰자에 사는 사람은 이렇게 행복한 상상을 한다. 언젠가 현실이 되길 바라며. 나도 노른자 입성기를 쓸 날이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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