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이 좋아
나는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드라마의 마지막 회는 열린 결말이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나의 상상력에 맡기는 그 무엇. 그리고 그다음으로 싫어하는 게 새드엔딩이다. 누군가 죽는 건 너무 싫다. 적어도 드라마에서 만큼은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대리만족이랄까.
인생은 결국 비극이래요
어릴 때 삶에 대한 나의 믿음은 그랬다. 언젠가 해피엔딩이었다. 단 한순간도 새드엔딩일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드라마에서 그간의 갈등이 해소되고 불문율처럼 나오는 마지막 장면처럼 어느쯤 되면 나의 모습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대화의 희열에서 이국종 교수님이 한 말이 떠오른다. "인생은 비극이에요. 사람은 다 죽으니까" 그렇다. 인생은 본래 새드엔딩이 확정된 여행이었다. 그런데 난 무슨 생각으로 해피엔딩을 생각한 걸까. 아마도 사는 동안의 모습을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떠한 선만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쭉 해피엔딩일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에 해피엔딩은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열린 결말을 싫어한다. 그런데 사는 내내 삶이란 것은 열린 결말이다. 당장 내일 죽을지 아니면 내가 100년을 살지 그것도 모르고 나에게 어떤 기회가 올지 내년, 10년 후 내 모습은 어떨지 그것도 모른다. 오늘 잠들기 직전까지 오늘의 결말을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오늘의 결말은 어떨지. 올해의 결말은 어떨지.
어쩌다 해피엔딩
인생을 좀 살아본 어른들이 말하는 인생은 행복한 그림이 아니다. 어쩌다 간혹 가다 오는 행복을 맛보며 사는 쓴 하루들이 찐 인생이라고 한다. 나도 이것에 부정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매일매일 행복하기 위해 집착했지만 이제 그런 건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이제야 찐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하루가 빼곡히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해피와 새드를 왔다 갔다 한다. 그리고 마무리는 나한테 달려 있다. 새드엔딩으로 갈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으로 갈 것인지. 한창 부정적일 때는 해피엔딩도 새드엔딩으로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그 반대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감사일기를 쓰라고 한다. 그것이 행복한 삶으로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한다. 순간 나의 글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나는 감성이 충분하다. 그리고 감성적인 사람들이 글을 쓴다고 한다. 감성적인 것과 우울한 것은 한 끗 차이다. 감성적인 사람들이 우울하기 쉽고 우울한 사람들이 감성적이기 쉽다. 감성적이면서 우울하면 감성적이지만 우울한 글이 나온다. 물론 이 글도 쓸모없는 글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끔 그 글을 쓰면서 더 우울함에 빠져들 때가 있다.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한다. 내 글은 어디로 흘러갈지.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흘러갈지. 아니면 계속 우울과 감성 사이 그 어디쯤을 왔다 갔다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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