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 게임
나는 버스에 따라 항상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광화문을 나가는 버스는 왼쪽 열의 맨 끝자리, 그리고 마포나 여의도, 강남 쪽으로 가는 버스는 항상 오른쪽 열에 앉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그 자리들에서 보이는 풍경들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특히 여의도나 마포 쪽으로 가는 버스는 오른쪽 자리에서만 한강이 보여서 그 자리를 꼭 고집하는 편이다. 그리고 올 때도 또 반대편으로 바꿔 앉는다. 그래서 항상 올 때나 갈 때나 같은 풍경만 보게 된다.
반대편에서 마주한 낯선 풍경
광화문에 나갈 일이 있어서 광역버스를 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 자리를 찾았다. 어라?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내가 항상 앉던 자리가 없다. 심지어 그쪽 열에 이미 누군가가 다 앉아 있다. 하는 수 없이 평소에 앉지 않던 오른쪽 열의 앞 좌석에 앉았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창 밖을 봤는데 쌩판 처음 보는 동네였다. 수십 번은 더 탔던 버스라 이 버스가 어디를 지나가는지는 다 알고 있는데 낯선 풍경에 깜짝 놀랐다. 순간 버스의 노선이 바뀐 건지 착각했다. 그리고 반대편을 보고서야 지금이 어디쯤인지 알 수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버스에서 반대편을 보았을 때 생판 처음 보는 풍경이 있었던 것처럼 나도 어쩌면 한 면만 보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고개를 돌려 보면 다른 풍경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주사위 게임
주사위에는 6가지의 면이 있다. 주사위를 던지면 무작위로 하나의 면이 나온다. 만약 주사위를 여러 번 던질 수 있다면 여러 면이 다양하게 나올 확률이 더 높아진다. 만약 인생이 주사위라면 어떨까. 단 한 번만 살 수 있으니 주사위를 던질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인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한 번의 인생 안에 주사위를 던지는 횟수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한번 던진 그 면이 자신에게 잘 맞아서 확신을 가지고 그 한 면만 바라보고 가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나올 때까지 계속 던지는 사람이 있다. 세상이 우리에게 던질 수 있는 횟수를 정해주지는 않았다. 주사위를 몇 번 던지냐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다.
그런데 여기서 인생과 주사위의 차이점이 있다. 주사위는 6면뿐이지만 인생은 무한대의 면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작위 게임도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면들을 여러 번 뽑을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개인이 가진 기회라고 부른다. 요즘은 한 개인이 던질 수 있는 주사위의 횟수가 경제적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고는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포기하고 한 면만을 정해서 살아간다면 너무 아쉬운 인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수없이 던져도 주사위는 닳지 않는다
재작년부터인가 뮤지컬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뮤지컬을 일부러 멀리 해왔다. 아주 어릴 때 유치원에서 뮤지컬을 보러 갔었는데 그때 그 웅장한 사운드가 나에게는 굉장히 무섭게 들렸었다. 그래서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뮤지컬을 무서워했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뮤지컬에 입문하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를 본 느낌이었다. 이렇게 좋은걸 여태껏 모르고 산 날들이 아쉬웠다. 오죽하면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당장 여기에 뛰어든다고 할 만큼 좋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고소득 안정적인 전문직이 꿈이었다. 오직 그것이 내 인생을 편안하게 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내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그걸 부정했다. 취업이 잘된다고 해서 아무 고민 없이 이과를 갔다. 수학을 못했고 수학을 죽을 만큼 싫어했지만 취업을 위해서라면 수학쯤이야 어떻게든 극복해 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수학도 극복하지 못했고 전문직도 되지 못했다. 그저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하며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직장인이 되었을 뿐이다.
내가 본 면에 행복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믿고 살았다.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내린 결론은 '내가 틀렸다' 이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면을 돌려봤어야 했다. 어차피 직장인일 줄 알았으면 하고 싶은 거나 남 눈치 보지 말고 원 없이 해보는 건데 하는 후회가 이제야 들었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지금은 내가 돈을 벌기 때문에 주사위를 던져 볼 기회가 그래도 조금 생겼다는 것이다. 가끔은 인생의 확신은 풀고 새로운 면을 볼 필요도 있다. 주사위는 많이 던진다고 해서 닳는 것이 아니다.
행복의 엔트로피 법칙
자연에는 엔트로피의 법칙이 있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바뀌며 결국 자연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사람이 한없이 불행해지다 보면 배짱이 생긴다. 결국은 자신이 행복한 것을 좇아가게 된다. 어차피 내 마음 바닥인 거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해보자 라는 생각인 거다. 이것을 '에라 모르겠다' 상태라고 부른다.
사회가 정해준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여전히 두렵다. 안정된 미래가 없다는 것이 무섭고 그 미래를 위해 남들이 가는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압박감이 계속 따라다닌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즐길 때의 몰입감은 다르다. 자신이 어느 길을 선택하든 실패는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원하는 길을 갔을 때 만나는 실패의 경우 극복 가능한 실패가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 극복 불가능한 실패가 된다고 한다. 나도 한동안 극복 불가능한 실패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극복 중이다.
나는 플랜 B, 플랜 C 까지 세우는 성격이라 무작정 열정을 좇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의 10시간을 열심히 돈 버는데 쓰는 우리에게 조금의 일탈은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안전바가 있는 상태에서는 최대한 후회 없이 여러 면의 주사위를 던져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행복을 따라가게 되어 있기에 결국은 모두가 자신의 행복을 찾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