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인해,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들로 인해 매일매일 크고 작은 상처들이 쌓여간다. 상처는 받을수록 아픈 것이지 무뎌지지 않는다. 어떤 상처는 비슷한 부류의 상처들까지 모조리 다 꺼내와 기억하게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렇게 상처를 받았음에도 또다시 마음을 준다. 마치 죽을지도 모르고 뛰어드는 불나방 같다.
마음의 신호등
'마음을 아끼지 말자' 라는 말을 좋아한다. 참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사람들은 마음을 최대한 아낀다. 항상 적당한 선을 지키며 살아간다. 마치 마음속에 신호등이 있는 것 같다. 마음의 기본값은 빨간불이다. 사람을 만날 때 항상 경계하고 잰다. 그건 저 사람에게 사기를 당할까 봐도 아니고, 저 사람이 싫어서도 아니다. 내가 상처받을까 무서워서다. 마음을 주고 실망하는 쪽보다 차라리 마음을 주지 않는 쪽이 낫다.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기까지는 꽤 오래 걸린다. 그리고 설사 초록불로 바뀌었다고 해도 그것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은 항상 조금씩 열린다. 지금껏 수없이 마음을 열었다 닫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문을 더 단단히 만드는 과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쉽게 열리지 않는다.
상처받는 이유
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잘 주는 편이다. 고마우면 항상 보답을 하는 편이고 누군가가 떠나면 항상 마지막 인사로 선물을 챙겨준다. 그런데 어떨 때는 고맙다는 말을 못 들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나도 괜히 챙겨줬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내가 주지 않았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는 건데 내가 일을 만든 것 같다. 그런데 따지고 보니 고맙다는 말을 안 하는 상대가 나쁜 사람인 것 같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닫는다. 꼭 큰일이 아니더라도 이런 자잘한 일들에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내가 실망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마음의 문을 닫는 거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 내가 끝까지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아무도 없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줄 때는 바라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실망도 없으니까 말이다. 마음을 주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다가간 만큼 저 사람도 다가오길 바란다.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혼자 머쓱해진다. 난 분명 저 사람과 나의 친분이 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저 사람한테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억울해진다. 나는 80을 줬는데 상대가 10을 줄 때 서로 주고받은 마음의 불균형이 생기면서 어느 한쪽이 상처를 받는 것이다.
상처받지 않는 법
상처받고 가장 후회하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생각하는데 쓴 시간이었다. 주고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 들을 선물을 준비하는데 쏟은 시간,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쓴 시간, 그들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희생한 내 노력들까지 모두 다 아까웠다.
선택을 할 때 오래 생각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심사숙고할수록 만족의 기댓값은 높아지고 선택의 결과가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실망감은 더 커진다고 한다. 사람도 똑같다. 상처는 오히려 가까운 사람한테 받는다. 그리고 내가 마음을 더 쓴 사람일수록 그 상처는 더 크다. 내가 만약 아무 선물이나 골라주고 그 사람을 대충 대했다면 덜 상처받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시간과 마음을 쏟을수록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지고 기대하는 것이 많아진다. 마음을 주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상처도 받지 않는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나의 시간을 그 사람에게 쓰지 않으면 된다.
사람은 본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아무하고도 엮이지 않고 혼자 살고 싶지만 그럴수 없다. 이게 우리가 불나방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내 인생에 좀 더 집중해 행복의 울타리를 두르면 다른 사람이 주는 상처에 무던할 수 있다고 한다. 행복은 강력한 방어막이다. 상처는 피할 수 없고 언제나 아프지만 내가 행복하면 같은 상처도 작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