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법을 모르는 직장인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고
아주 유명한 '태양을 피하는 방법' 이라는 노래다. 저기서 '태양' 을 '일' 로만 살짝 바꾼다면 직장에서 도망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의 마음을 그대로 묘사한 것 같다.
얼마 전 휴가였다. 어쩌다 보니 지난여름에 휴가를 가고 1년 만에 맞는 긴 휴일이었다. 1년간 쉼 없이 꼬박 일하면서 많이 지쳐있었다. 그래서 휴가만 받으면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계획을 잔뜩 세웠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극성수기라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숙소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당일치기도 어려웠다. 기차고 버스고 모두 매진이었다. 예약대기를 걸어봤지만 나에게까지 자리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바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바다는커녕 강을 보러 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후반전을 위한 하프타임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침대에서 벗어날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보상심리가 생겼다. 최대한 에너지를 비축하고 싶었다. 휴가를 끝내고 출근하면 또 많은 에너지를 소진할 것을 아니까 지금 최대한 힘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박여서인지 어떤 것을 하기 전에 항상 이걸 해서 더 피곤해지면 어쩌지? 하는 겁이 먼저 났다. 나에게는 최대한 내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휴가이지만 휴가가 아니었다. 나만 생각하는 시간이 아닌 다음 일을 위한 쉬는 시간 같았다. 마치 축구에서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있는 하프타임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이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괜히 일주일 동안 직장인이 아닌 새로운 페르소나로 살아보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게 내 휴가는 새로운 페르소나는커녕 다시 일을 하기 위해 몸을 사리다가 끝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집에 콕 박혀서 말이다.
퇴사 후 백수생활 미리 보기
생체리듬은 더 엉망이 되었다. 새벽에 늦게 자니 정오가 돼서야 눈이 떠졌고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순간 내가 퇴사하고 백수가 된다면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 기간의 마지막 며칠은 쉬는 것도 아니었다. 다시 일로 복귀하기 위한 시간들이었다. 내가 쉴 동안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는지 내가 복귀하기 전 새롭게 알고 가야 할 내용이 있는지 등을 정리해야 했다. 내 목표는 쉬는 동안 최대한 일을 안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나의 휴가는 구체적 계획을 세우지 않는 P 형의 휴가였다. 내가 J인지 P 인지 헷갈렸었는데 내가 P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시간이었다. 이번 휴가 기간 동안 얻은 것은 내 MBTI에 대한 확신과, 자유는 확실히 좋다 라는 것, 어떻게 해야 퇴사를 해야 할까 하는 궁리였다. 다시 출근해야 할 날이 돌아오는 게 그렇게 싫었다. 소가 도살장에 끌려갈 때 이런 기분 일까. 계속 일하는 것보다 쉬다가 나가는 게 백배는 더 힘들다. 그렇게 덧없이 내 휴가는 끝나가고 있었다.
쉬는 법을 모르는 직장인
하지만 내가 매번 휴가를 날려먹는 가장 큰 이유는 쉬는 법을 모른다는 것에 있다. 항상 일하는 것만 익숙해져서 인지 쉬는 날에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피로가 풀리는 건지도 모르겠고 나한테 맞는 쉬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그냥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있으면 쉬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다고 피로가 풀리지도 않더라. 머릿속으로는 계속 같은 생각과 고민만 하고 있으니까 몸은 누워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하루 종일 유튜브나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볼 때는 즐거운데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아주 기분이 안 좋았다. 하루를 날려먹은 느낌이랄까. 나한테는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쉬는 날에도 말이다. 그런데 머리와 행동은 늘 따로 논다.
일상에서 도망치는 법
휴식법에 대한 책도 읽고 잘 쉬는 법이 무엇인지에 관한 영상도 많이 봤다. 답은 다 달랐다. 그런데 모두 똑같이 말하는 것은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이 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거나, 명상을 해서 정신을 쉬게 하는 것이 진짜 쉬는 거라고 한다. <여행의 이유>를 쓴 김영하 작가님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람들이 호텔에 가는 이유가 그곳에는 일상의 근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기 때문에 일상의 상처와 기억을 피해 호캉스를 가는 거다.
이 말을 듣고 '유레카!' 했다. 나는 여행보다 혼자 조용히 호텔에서 쉬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하루 이틀 지내다 오면 정말 잘 쉬다 온 기분이었다. 그런데 스스로도 궁금했다. 도대체 나는 호텔을 왜 좋아하는 걸까? 그 답이 김영하 작가님의 말을 듣고 해결 되었다. 그곳에는 상처가 없다. 매일 지내던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다른 생각으로 이끌어준다.
확실히 휴식을 위해서는 공간에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극성수기였던 이번 휴가는 돈도 돈이지만 방도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서울로 호캉스를 가자니 그래도 휴간데 서울을 가서 쉴 거면 그냥 집에서 쉬지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그 서울이라도 나갔다 올 걸 그랬나 후회가 된다. 그래도 이번 휴가에는 돈은 굳었다 하는 마음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