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해답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을 꼽으라면 , 아니 인생에서 어쩌면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평생 고민을 꼽으라면 그건 바로 인간관계 일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가족이라는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태어나서 학교 친구, 직장동료, 연인 등등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밀도의 관계를 맺는다. 살면서 수도 없이 깨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는 '관계' 말이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꽤나 많은 풍파를 겪었고 그 속에서 성장도 많이 했다. 그리고 최근에 깨달은 게 또 하나 있다.
내가 맞춰야 하는 관계
나는 일대일 만남에 어색한 사람이다. 친구도 둘이서 만나는 것보다 세명이 좋고 네 명이 좋다. 단 둘이 만났을 때에는 내가 대화를 계속해야 하고 계속 화두를 던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이 과정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난 어지간해서는 불편해하는 편이다.
어릴 때는 더 심했다. 사람 자체를 어려워했다.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사람을 만날 때는 이 사람에게 나를 맞추려고 했고 저 사람을 만날 때는 저 사람에게 나를 맞추려 했다. 그때는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고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내 의견은 항상 없었다. 식사 메뉴를 고를 때도 항상 상대를 배려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말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항상 상대방이 만족할 만한 선택에 내가 따라주는 편이었다. 약속을 잡을 때도 그랬다. 난 싫은데 상대는 그날이 좋다고 하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관계는 쌍방인데 어떻게 보면 난 일방적인 인간관계를 했던 것이다.
'어른' 들의 인간관계
나이가 먹을수록 놓아가는 것들이 있다. 인간관계도 그중 하나이다. 지금은 옛날만큼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다. 내가 정말 마음을 주었고 좋아했던 친구가 배신한 적이 있다. 하루아침에 어떤 일로 연락을 끊었다. 내 인생에서 제일 두터운 관계였다고 생각했는데 제일 쉽게 끝난 관계가 되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나는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려고 연락하고 안부를 물어도 소원해지는 관계가 있었다. 내 노력의 문제일까. 한때는 그게 내 노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은 아니다.
영원한 관계는 없다. 한번 친구가 되면 절교하지 않는 이상 그 친구가 영원할 거라는 내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 사회생활을 해보니 그렇다. 정말 친했던 동료도 누구 한 명이 퇴사하는 순간 연락이 점점 끊어진다. 그리고 또 새로운 동료와 일하게 되고 그들과 친하게 지낸다. 사람이 떠나가면 또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학교 다닐 때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각자 먹고사는 게 바쁜 '어른' 들의 세상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걸 알게 된 후부터는 인연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단지 만나서 같이 일했을 때, 인연이 되었을 그 시기에 그들과 내가 서로에게 좋은 동료였고, 친구였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인간관계는 90프로 성공한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연인 관계
연인관계에서는 더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쓴다. 물론 이게 나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게 과하게 되면 어느 순간 '내가 없어진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건 좋은 연애가 아니다. 나를 모두 상대에게 맞췄다는 거니까. 그리고 이런 연애는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어느 한쪽이 상처만 받고 끝날뿐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라' 이 말이 맞는 말이다. 나도 전에는 이 말을 듣고 "이런 사람이 어디 있어..?" 라고 생각했지만 그 인연을 오래 기다려야 하더라도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게 맞다. 상대를 만날 때 긴장이 되고, 자리가 불편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 내가 바뀌고 노력해야 유지되는 그런 관계는 "NO" 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내가 노력해야 하는 관계는 아슬아슬 흔들리는 촛불과도 같다. 누가 작은 바람이라도 후- 불어버리면 바로 꺼질 그런 것 말이다.
내가 노력해야 하는 관계는 그만
요즘 또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그래서 옷도 신경 쓰고 머리카락 하나 삐져나온 것도 신경 쓰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다 문득 이런 내가 어이없어 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래도 꽤 좋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바꿔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답은 아니었다. 사람을 만날 때 기본적인 예의와 깔끔한 외모 정돈 정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상 어떻게 하면 내가 그 사람 마음에 들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거기부터는 잘못되었다. 그냥 온전한 '나' 로서 그 사람을 대했을 때 그 사람도 내가 좋으면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아쉽더라고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세상에는 나와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고 또 나랑 맞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존재하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그 사람들과 잘 지내면 된다. 그러니 이제 내가 힘든 그런 관계는 훌훌 털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