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만 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다. 두 갈래 길에서 하나의 길만을 걸어 온 것을 아쉬워하며 그때 선택한 길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시인의 회상에, 나도 이맘때면 문득 상념에 잠기곤 한다.
꽉 막힌 도로를 운전할 때마다 다른 길로 갔더라면 쉽게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집에서는 아내, 골프 칠 때는 캐디, 운전할 때는 내비게이션을 잘 따르는 것이 ‘남자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유머가 있다. 그 말에 콧방귀를 뀌다가 그것을 따르지 않은 대가를 자주 경험하고는 고분고분해졌지만, 막힌 길에서는 선택한 길을 후회하곤 한다. 두 길을 동시에 간다면 어찌 될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지만 같은 시간에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산다는 것 자체가 매 순간 선택하는 것이니, 흐르는 시간은 곧 선택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내 인생에서의 선택은 어떠했을까. 많은 사람에 있어, 첫 번째 선택은 청소년기의 학업의 진로가 아닐까 싶다. 나의 그 길은 소년 시절부터 나빠진 시력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그 시절에는 진학이나 입사 등에 시력을 자격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때 성적이 우수한 중학생을 선발하여 나라가 모든 것을 책임져주는 공업고등학교가 있었다. 가정형편을 생각하면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으나, 그때 발목을 잡은 것이 시력이었다. 그러나 시절이 바뀌고, 그 학교에 갔던 사람들의 후회를 들어보면 가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혹시 그 길로 갔다면 기술 분야의 명장이 되어 지금도 현장을 멋있게 누비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학 진학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입시를 앞둔 3학년 여름쯤에는 선배들이 학교를 방문했다. 그때 사관학교나 해양대학교 등, 제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선배들을 동경했다. 4년간 무료로 공부하고 생활한다는 것은 부모님께서 기뻐하실 일이었다. 다음 날에는 일반 대학교에 진학한 선배들이 와서 “제복에 끌리지 말라”며 또 다른 유혹을 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마도로스가 될 수 있다는 하얀 제복을 입은 선배들이 한동안 눈에 아른거렸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시력 때문에 지원 자격조차 얻을 수 없었다. 결국 공대를 가겠다고 하자 교사였던 사촌 형조차 망치 두들기는 일을 왜 하려고 하냐며 한의대를 권했지만, 나도 한의사는 침이나 들고 있는 고리타분한 영감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결혼은 아내와 만나 열 달간 뜨거운 연애를 하는 중에, 부모님께서 눈치채시고는 일사천리로 결혼이라는 형식의 문으로 들이밀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거나 맞선의 설렘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억울(?)한 일이다.
직업을 가질 때도 선택이라는 고민을 하긴 한 걸까. 대개가 그렇듯이 회사원이라는 평범한 길을 택하고 시절을 잘 만나 좋은 회사에 어렵지 않게 발을 들인 것이, 무슨 큰 결정이었을까. 오히려 회사라는 큰길에 들어선 후, 곳곳에 숨어 있던 작은 오솔길에서 어디로 갈까를 더 치열하게 고민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많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선택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 길인가 저 길인가를 두고 절박한 저울질을 했다기보다 어쩌면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갔을지도 모른다. 진학의 길은 시력 문제로 몇 개의 길은 없어지고, 남은 길을 따라간 것은 아니었을까. 결혼은 아내만 눈에 들어와 있었기에 오로지 외길만이 있었을 뿐이었고, 사회생활 마지막에 몸담았던 회사도 나의 선택의지가 아니라 외부의 힘에 정해진 결과였다. 그렇다고 결과가 아쉬운 것은 아니었다.
돌아보니 이제껏 너무 쉬운 길을 걸어 온 듯하여 맘이 편치만은 않지만, 지난 일은 늘 아름다운 것이려니 한다.
이번 추석에 성묘를 마치고 출발하는데 내비게이션이 7시간이나 걸린다고 알린다. 아무리 명절이라지만 예전보다 두 배나 걸린다는 상황에, 세 개를 비교해서 빠르다고 하는 것을 따라갔다. 선택한 그것은 구불구불한 산길과 고갯길을 지나는 어려운 길을 안내한다. 후회가 막심했으나 조금은 빠르려니 했다. 그러나 한 시간 이상 빠르다고 약속했던 그것은 가는 내내 시간을 바꾸더니, 도착 무렵에는 다른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인생도 이런 것인가보다. 어느 길로 갔던지 그 결과는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선택한 것인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인지, 여하튼 그 결과는 오히려 지금이 더 다행스러운 결과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선택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뜨거운 여름은 지났다. 한동안 멈췄던 서울 둘레길을 걸으려 다시 숲속에 섰다. 친절한 이정표와 곳곳에 매어 놓은 주황색 리본이 길은 하나뿐이라고 말해준다.
시인이여! 나는 아직 숲속을 걸어가는 여행자, 이제는 두 갈래 길이 보이지 않소. 끝을 알 수 없는 하나의 길이 놓여있을 뿐이오. 그러나 여행자는 멈추어 서 있을 수는 없으니 이 길을 가야만 하오. 이 길도 지나온 어느 한 갈래 길처럼 노란 숲속의 아름다운 길일 것이오. 하나의 길만 있으니 훗날에 모든 것이 달라질 일도 없을 터, 이 얼마나 다행이오. 붉은 잎새를 밟고 노란 잎새를 보면서 사뿐사뿐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오. 드디어 여행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찾았으니 이제는 마음이 편안하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