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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by 동틀무렵

저만치 지하철역 입구에서 노인 한 분이 전단지를 나눠주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에 회사 시절이 떠오르는 것은 아직도 그때가 그리워서는 아니겠지? 새로 조성된 대규모 연구 단지라서 하루가 멀다고 식당이나 커피집이 새로 들어섰다. 회사 앞에만 나가면 할머니 몇 분이 늘 전단을 돌리고 있었는데, 특히 어느 한 분이 생각난다. 그분은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며 재미있는 말을 걸어와서 도저히 받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키가 자그마했던 그분은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실까.

역 입구에 다가가자 내게도 전단지를 건네주는데 두 장이 겹쳐있다. 빨리 돌려버리자는 속마음이었을까? 전단지 내용은 노인을 상대로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광고 같은데 내가 벌써 그런 대상이 되었다는 것일까. 꽤 좋은 호텔에서 공짜 선물도 푸짐하게 준다는 내용에 아직도 이런 것이 먹히는가 싶다. 두 장을 주는 노인의 속마음에 빙그레 웃음이 나오고, 이런 것에 혹할 사람으로 보이는가 싶어 씁쓰레한 웃음이 나왔다.

나도 전단지를 돌려본 적이 꽤 있었다. 회사 시절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면 고객에게 알리기 위해 전 사원이 움직였다. 물론 TV에 광고하고 온갖 홍보 기법을 동원하지만, 전단까지 돌리는 것은 사업 성공을 염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모으는 의미가 있었다. 주로 출근 전 이른 시간에 지하철 입구 같은 곳에서 쑥스러움을 어색한 웃음으로 감추면서 나누어 주었다. 언젠가 IMF 때었다. 그때도 회사의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어 홍보 행사를 했는데, 나는 살고 있던 동네에서 하겠노라고 손을 들었다. 그게 실수였다. 부근에 살던 사촌 처남댁이 하필 전단을 나누어 주던 내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무슨 일 있냐고 물어왔다. IMF로 직장을 잃은 사람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전단지는 자영업을 창업한 사람이 자기의 업을 알리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것 외에는 자신의 창업을 알릴 방도가 마땅치 않은 그들이 미래의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홍보 방식이다. 그러니 상대가 응해주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가까이하기 꺼려지는 더러운 사람을 보듯이 외면하거나 몹쓸 병에 걸린 사람을 피하듯 하고, 심지어 손을 뒤로 감추며 혐오의 표정까지 짓기도 할 때는 정말로 머쓱하고 창피스럽기까지 하다.

전단지 한 장은 손바닥만치 작고, 바람에 팔랑 날아갈 만큼 가볍다. 그러나 그 종이에는 그것의 진짜 주인인 광고주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거기에는 한 사람, 한 가정의 모든 희망과 꿈이 들어 있을 터여서, 크기는 작되 깃든 희망은 작지 않고 무게는 가볍되 우주 전체만큼의 무거운 책임이 들어 있다. 수천만, 수억 원의 돈을 들여 첫 발자국을 떼면서 실패의 두려움과 성공에의 조바심도 들어 있을 것이다.

또 거기에는 또 다른 이웃의 소박한 바람도 깃들어 있다. 용돈을 받아 들고 해맑게 웃는 손주의 얼굴을 떠올리는 할머니의 마음도 있고, 얼마간의 돈이라도 벌어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절박한 삶이 들어 있기도 하다.

오늘도 저 멀리에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할머니가 보인다. 사람들이 외면할까 봐 괜히 마음이 쓰이는데, 다행히 앞서가던 젊은 여성이 받아 든다. 그러나 받자마자 길가 쓰레기통으로 홱 던져 넣는다. 할머니는 나누어 줄 의무를 다했으니 그것이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왠지 마음이 씁쓸할 것 같다. 나라도 잘 받아야지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가갔지만 웬걸, 내게는 주지 않는다. 아마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는 여성 전용 헬스클럽 같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 어떤 것을 하기에는 나이 든 사람으로 보였을까.

전단지는 그냥 버려져야 할 종이 한 장이 아니다. 우리 이웃의 꿈이다. 그 꿈을 외면하지 말자. 아무 말 없이 받아 주고 눈길 한 번만 주자. 그리곤 종이비행기로 접어 하늘 높이 날려보자. 누군가의 희망도 높이 나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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