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아닌 동물과의 차이 중의 하나는 허구를 만들어 내거나 상상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동물의 의식 세계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인간의 오만이겠지만, 이는 사람과 여타 동물 간의 차이를 설명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인간의 특질인 이것들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위나 말은, 사실 모두 ‘거짓’이라고 해야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인류 진화에 따라 생성된 능력이니 필요한 의식임은 분명할 것이다. 따라서 허구와 상상은 인간임을 증명하는 능력의 하나이다.
허구의 결과물이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 예술이 된다. 소설 같은 문학이 그렇고 추상화 같은 그림이 그렇다. 한결같이 인간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거나 지적 인식을 깊게 하고 넓히는 산물들이다. 또, 허구가 인류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과학이 된다. 인류의 위대한 과학적 업적은 대부분 상상과 추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허구가 사회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거짓의 행동과 말이 된다. 그런데 거짓이라는 것도 필요가 있었으니 진화과정에서 발달한 능력일 것이다.
살아오면서 거짓말 한번 해보지 않았다면, 그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의 거짓말은 하며 산다. 선의의 거짓말, 배려의 거짓말, 상대를 곤란하지 않게 하는 거짓말 같은 것들이다. 꼭 필요치 않다면 나쁜 소식을 알리지 않은 것은 그 사람을 배려해서 하는 것이며,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차가 막혀서였다든지 시간을 잘못 기억했다든지 하며 변명하는 것은 상대의 불쾌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려고 하는 거짓말이다. 나의 괴로움을 애써 웃음으로 감추는 것은 거짓일지라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그맨들이 큰 슬픔을 당하고도 무대에 올라서 웃는 것도 거짓된 행위이지만 오히려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칭송받기도 한다.
상대를 늘 기쁘게 하는 거짓말도 있다. 날마다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남정네가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이렇게 인간은 거짓말이 없으면 살아가기에 불편을 느끼는 존재이며 사회는 지금보다 더 삭막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 외에는 모두 하지 않아야 할 거짓의 말이며 행위들이다. 하도 많아 그 종류는 굳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것들은 자기의 이득만을 위하거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그러한 거짓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왔다. 온 사방에 횡행하는 거짓말에 신이 드디어 인간 세상에 개입한 것인가?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한 거짓말, 막무가내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비틀었던 말도 한순간에 거짓말이 아니게 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일개 판관에 의해 세상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오늘 아침 아파트 입구에 피어난 살구꽃같이 갑자기 찾아온 아름다운 세상에 기쁘기보다 어안이 벙벙하다.
신이 내게 물어온다. “네가 여태껏 남에게 해가 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 것은 거짓이 아니더냐?” 나는 대답한다. “거짓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기억의 인식이고 단지 의견을 표명한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