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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세상

by 동틀무렵

가끔 복잡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실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왜 수많은 생물 종 가운데서 우리 인간만이 이렇게 진화해서 사고의 영역을 넓히고 인식을 심화하여 지금과 같은 문명을 만들어 사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어떤 거대한 생물에 기생하여 사는 세균 같은 생물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만약 내 몸속에 있는 박테리아나 세균도 지능과 인식이 있다면 나처럼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들은 내 횡격막까지가 세상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겠다. 그들이 내 몸의 한 공간을 그들의 온 세상이라고 느낀다면, 우리 인간도 그런 상상을 해볼 수는 있지 않은가.

우리는 늘 진실을 부르짖으며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으니 그것에 의존하는 것은 자주 오류투성이다. 말이란 한번 입에서 나와서 소리로 공중에 흩어지면 그것으로 사라진다. 더구나 두 사람 사이에서만 오간 것이라면 나중에는 그 진실을 가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중요한 일들은 기록으로 남긴다. 과거에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방법이 문자였다. 특별히 왕조시대의 실록이 그렇다. 조선왕조의 실록은 그 방대하고 장구한 세월의 기록에 더하여 최고 권력자도 볼 수가 없고 절대 고치지 못하게 되어있어 그 엄정한 진실성으로 더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러함에도 고친 경우가 있거나, 또 어떤 기록은 진실을 의심받고 있기도 하다. 선조실록의 수정과 정조대왕의 사망에 대한 구구한 주장들이 그런 것의 하나이다. 이는 승지들이 아무리 엄정하게 기록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도 하며, 힘 있는 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리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사실임을 꼼짝 못 하게 증명하는 利器가 등장했으니 그것은 사진과 영상이다. 순간의 장면을 그대로 고정하기에 그 진실성은 거의 의심받지 않으며, 언제라도 시간을 거슬러 가서 그때를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타임머신과 같은 것이다. 다만 작금에 이르러서는 조작이나 AI가 만든 것이 있어 다 믿을 것은 못 되지만, 그것을 판별하는 기술도 함께 발달하여 거짓된 것은 족집게같이 짚어내니 크게 걱정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 어느 재판에서 당시를 그대로 찍어 놓은 사진도 조작일 수도 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사진 일부를 따로 떼어 확대한 것은 조작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결정이며 법의 판단이니 우리는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결정으로 우리 사회에는 큰 혼란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가당찮은 생각을 해본다. 가령 증명사진 같은 것이다. 요즘에는 증명사진을 찍으면 약간의 손질을 한다. 어두운 피부를 밝게 하거나 어떤 부분은 살짝 고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사회 초년생들의 입사지원서 사진은 한결같이 선남선녀들이다. 그들과 대면할 때 얼굴이 사진과 크게 달라 보이면, 취업에 얼마나 목말랐기에 지치고 긴장한 얼굴에서 저런 예쁜 사진을 만들었을까 싶어 안쓰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은 조작으로 판단하여 감점해야 할까도 싶다. (이제는 내게 그런 기회가 없지만) 자신을 증명하는 사진조차 실물과 같은 것일까를 의심해야 하니, 그건 그렇다 치고 이미 그 사진으로 입사나 사회에서 여러 증명에 쓰여버린 것은 어쩌나.

추억을 간직하려고 사진 여러 장을 묶어 콜라주로 만들거나, 편집하여 앨범으로 만드는 것도 조작이다. 줌으로 당겨 확대하여 찍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아가, (잘은 모르지만) 사진 찍는 일은 피사체가 반사하는 빛을 조절하여 사물이 가진 특별한 아름다운 순간을 고정화하는 작업이니, 사진 찍는 행위 그 자체도 조작 행위가 아닌가. 영상도 마찬가지다. 뉴스 영상도 필요한 부분만 촬영하고 편집한 것이니 사실로 볼 수 없다. 어제 나도 이쁜 벚꽃 송이를 소소한 기법으로 찍었는데 조작질을 한 것일까.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조작범이 되며 곳곳에 널린 조작된 것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제 사진 예술가는 사라져야 하고, 사진관과 사진학과는 폐지해야 한다. 카메라 생산도 중단해야 한다. 그래서 니체는 일찍이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다. 우리가 말하는 진실은 사실상 해석된 진실이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물리학의 최신 이론 중 하나는 우리는 수없이 많은 다중우주에서 수없이 많은 내가 평행으로 존재하며,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홀로그램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이론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조작된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이 이론을 이해하려고 하지는 말자. 다만 황당한 헛소리는 분명 아니다) 나 또한, 나 자신이 실존이 아니며 어떤 거대한 생물의 꿈속에서 존재하는 하나의 형체나 움직임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가끔 해본다. (이건 황당한 헛소리다)

그러니 판결이 맞고 틀리고를 따지지 말자. 우리가 보는 것, 만져지는 사물, 내 몸도 모두 홀로그램일 수도 있다고 하니, 확대한 사진이 조작이라 한들 아니라고 한들 거기에 목매어 시비를 가릴 필요가 무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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