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을 맞아 성묘하러 고향에 가는 길이다. 길이 막히면 참을성이 떨어지고 갈수록 몸의 여유가 허락되지 않아, 몇 년 전 고향 가는 길에도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자주 이용하고 있다. 고속열차는 좁은 자리가 답답하게 느껴져서 그때마다 휠체어 좌석이 있는 열차 칸의 앞자리를 찾는다. 자리를 잡고 한숨 돌리는데 여성 한 분이 휠체어에 할머니를 태워 올라서 열차 좌석에 앉히려고 한다. 그 행동이 조금은 서툴러 보인다. 겨드랑이 밑에 한쪽 팔을 넣어 감싸 안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허리춤 뒤쪽을 힘껏 움켜잡고 단번에 힘을 써야 하는데, 경험이 많지 않거나 힘에 부쳐 보인다. 지켜보는 조바심에 그 여성이 힘을 쓸 때마다 나도 움찔움찔 힘이 들어간다. 그러다 할머니를 간신히 일으켜 세울 때쯤, 바퀴가 뒤로 밀리며 두 분이 휘청거린다. 대각선 자리에서 지켜보던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휠체어를 잡았다.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켜 밀려나는 휠체어를 잡은 것은, 아까부터 어머니를 보고 있어서였다. 휠체어를 보면 어머니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어머니께서 건강하실 때는 아무런 관심이 없던 물건이었다. 그러나 말년에 보행 능력을 잃은 어머니에게는 그것이 당신의 발이었다.
고향에 갈 때면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집을 나섰다. 길 건너 강둑에 붙어 있는 너른 들판을 걸었다. 꽃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길가의 들꽃 하나하나에 눈길을 보내며 가는 길을 자주 멈추라고 하셨다.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는 들판에서 노을을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서산으로 넘어가는 석양을 보며 지난 시간을 회상하셨을까. 자식 걱정을 하셨을까. 바람에 실린 어머니의 향기가 희미하게 느껴지면 아들은 뒤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휠체어를 밀며 가는 길은 내가 어머니를 미는 것이 아니었다. 무섭거나 부끄러워질 때면 엄마의 치마폭에 숨어서 느꼈던 어릴 적 그 안온함은 나이가 들어서도 매한가지였다.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하는 그 포근한 시간이 오래이기만을 바랐다.
강아지를 앞세워 동네를 산책할 때마다 어느 두 분을 만나곤 했다. 며느리인지 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노인을 태워 아파트 안을 산책하다가 정문 앞 길가에서 지나가는 차와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들이었다. 추운 겨울에도 담요와 목도리로 꽁꽁 싸매고 그러했다. 내가 어쩌다 지나갈 때도 예의 그 모습으로 거기에 있었으니 거의 매일 그렇게 하는 모양이었다. 지난 시간,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들판을 걷던 때가 떠올라 자꾸 그분들에게 눈길이 갔다. 말을 붙이고 싶었다. 딸인지 며느리인지도 물어보고 싶었고 연세도 여쭈고 건강도 여쭙고 내 어머니와의 추억도 나누고 싶었다. 자주 만나다 보니 살짝 눈인사할 정도까지 되었으나 늘 마음만 그러고 말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지난겨울부터는 보이지 않는다. 몸이 더 쇠약하여져 병원으로 가신 건지 아니면 방정맞은 말이지만 먼 길을 가신 건지, 요즘도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분들이 궁금해진다.
얼마 전에 갑자기 산길을 무리하게 걸었더니 무릎이 아파져 왔다. 일시적이려니 하고 뭉그적거리다가 병원을 가서 약간의 치료를 받았다. 한 달여를 무리하게 걷는 것에는 조심하며 스스로 이동을 제약하며 지냈다. 그런 조그만 탈에도 갑갑하기가 그지없는데 어머니는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다시 걸을 수 있게 고쳐달라고 어린애처럼 떼쓰던 어머니의 애원에 응답하지 못한 아들의 마음은 미어지기만 했다.
열차가 도착할 때는 미리 휠체어를 잡아드렸다. 모시고 온 분이 연신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오랜만에 잡아 본 그 손잡이가 참으로 따뜻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노인을 보면 어머니가 다가온다. 왜 더 자주, 더 많이 하지 못했을까. 아들이라는 어머니의 튼튼한 다리가 있었는데 왜 그러질 못했을까, 하는 회한이 사무친다. 어머니는 의자에 여왕처럼 앉아 계시고 아들이 든든하게 잡은 휠체어로 다시 한번 너른 들판을 걸어볼 수 있다면…. 그럴 수 없음에 오늘도 애통하다.
휠체어는 어머니가 거기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