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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by 동틀무렵

가끔 골프장을 찾을 때면 부모님 산소가 먼저 떠오른다. 잡초 하나 없이 잔디만 푸르른 필드를 보면, 왜 부모님 묘소를 저런 모습으로 가꾸지 못할까 하는 죄송함이 밀려든다.


십여 년 전, 아버지를 선산에 모신 뒤 가끔 가서 잡초를 뽑고 봉분을 어루만졌지만, 하루에도 다르게 자라는 잡초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어느 날, 캐디에게 물었더니 골프장에서는 잡초는 없애고 잔디만 자라게 하는 약을 쓴다고 했다. 이듬해 봄, 약제를 구해 산소에 올라 20L 두 퉁의 물에 약을 희석하여 분무기로 뿌렸다. 과연 그 효과는 대단했다. 그해 가을, 벌초하러 갔더니 새파란 잔디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산 아래에서 무거운 물을 산소까지 옮기는 것은 혼자서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일을 마치고 누님댁에 들러 이야기했더니, ‘딸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라고 하신 어머니 말씀을 꺼내며 수고를 치하했지만, 듣기가 민망했다. 사실 남자 형제가 하나쯤 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꼭 이럴 때가 아니라도 어릴 때부터 남자 형제가 있는 집이 부러웠다.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한 적은 없었지만, 왜 남동생이 없냐고 떼를 쓰기도 했다. 남동생 하나만 있어도 식은 죽 먹는 일일 텐데 혼자서는 다시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4년 전 어머니를 아버지와 합장으로 모시며 봉분이 새로 조성되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잡초가 잔디 틈을 파고들고, 봉분은 해마다 조금씩 내려앉는다. 양지바른 명당이지만, 석비레(굵은 모래가 많이 섞인 흙) 땅이라 물 빠짐은 좋아도 잔디가 살기에는 그리 좋지 않은 모양이다. 해마다 두어 번 가서 잡초를 뽑고 잔디 씨를 새로 뿌렸지만, 늘 마음에 차지 않았다. 더구나 유난했던 지난해 여름을 지나면서 잔디는 태반이 새까맣게 말라죽었다.


지난 한식 때 또 마음을 먹었다. 봉분에 잔디를 덧붙이고 벌초하기가 힘든 묘소 축대에는 꽃잔디를 심을 요량을 했다. 문제는 물이었다. 이리저리 며칠을 궁리했다. 물은 작은 통으로 나눠서 들고 가야겠군, 생각하며 아파트 재활용장을 뒤져 큰 페트병 10개를 모았다. 물뿌리개도 필요하니 혹시 페트병 입구에 끼워 사용하는 그런 것은 없을까? 내가 아쉬워하는 것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는다는 생각에 ‘다이소’에 갔더니 역시 그런 것이 있었다.


산 아래 도착해 기슭을 올려다보면 묘소가 눈에 들어온다. 가슴은 벌써 울컥하고 발걸음은 고향 집을 찾아온 듯 바빠진다. 물통 열 개와 잔디를 짊어지고 세 번을 오가며 산소에 오른 뒤, 듬성듬성한 곳에 잔디 두 포대를 심었다. 지난해 여름에 잔디가 많이 죽었는지라 두 포대로도 조금 부족했다. 아쉬움에 묘소 옆 잔디가 성한 곳을 삽으로 떠 수십 번을 오가며 봉분 위에 덮고 돋우며 다졌다. 축대에는 꽃잔디를 심지 못해 산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심어 놓았다. 어머니는 꽃을 참 좋아하셨지. 페트병에 담아 간 물로 우선 잔디에 목을 축여 놓았다. 잡초를 마저 뽑고 봄 햇살 아래 산소 곁에 앉아 조용히 마음속 말씀을 올렸다. 이제 며칠 내 비가 내려야 잔디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부모님 산소를 가꾸고 돌볼 수 있을까. 육신이 그 땅 아래에 계시니 산소는 예쁜 집같이 포근해야 하리라. 우리 세대는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치고, 아랫 대들은 아무 관심조차 없어 해마다 산소는 어쩌나, 벌초는 어쩌나 걱정만 한다. 몇 해 전 문중이 의논하여 언젠가 산소를 묵힐 날을 대비하여 위패는 봉안당에 따로 모셨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부모님의 산소를 그냥 둘 수는 없다. 힘에 부치더라도 힘이 닿는 날까지는 돌보고 가꿔야 하리라.


‘못다 한 효도’란 말은 어쩌면 잘못된 표현이다. 이 말은, 하려 했는데, 또는 하고 있었는데 다 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보다는 ‘하지 않은 효도’가 더 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父母不孝死後悔. 지금에 와서 묘소의 잔디에 공을 들인 들 그 무엇하랴마는, 이렇게라도 하는 것은 불효의 한을 스스로 위무하는 것이기도 하고, 여전히 곁에 계신 듯한 부모님께 따뜻한 이불이라도 덮어 드리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아침마다 비 소식을 먼저 챙겨본다. 오늘 서울에는 비가 흠씬 내린다. 고향에도 ‘비님’이 오시는가 싶어 형제들에게 물어본다. 서울엔 잘도 내리는 비가 정작 고향에는 한 방울도 오지 않는다는 말에 맥이 빠진다. 비가 내린다고 청개구리는 개굴개굴 운다는데, 비야 오너라, 하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나도 동화 속 그 청개구리와 뭐가 다르냐.



* 石비레 : 굵은 모래가 많이 섞인 흙. 돌이 풍화하여 생긴 것 흙이다. 흔히 ‘마사토’라고 하는데, 이는 일본어 ‘まさど(마사도, 真砂土)’이며 우리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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