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인류는 상상한 것은 대부분 이룩해 냈다. 어린 시절 어린이 잡지에서 읽었던, 저절로 가는 자동차는 자율주행차로, 움직이는 도로는 에스컬레이터로 실현되었듯 거의 모든 상상한 것은 현실이 되었다.
한참 전부터 우리 정치에서는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너무나 많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정치 현실에 ‘설마’라는 단어조차 무색해졌다. 설마 그런 일을 벌이겠냐고 생각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났고, 또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하는 사이에 그런 일은 이루어지거나 이뤄질 직전까지 와있다. 모든 일은 상상에서나 생각했던 것 투성이며, 어떤 것은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일도 있다. 이렇게 여기서도 인간은 상상한 것은 반드시 구현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하고 있다.
나는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주도하는 자들에게, 각자의 관점에서 무비판과 무조건의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많아졌다. 왜 그럴까를 한동안 생각했어도 그 답을 찾지는 못했다. 주변에서는 이런 내 생각에 대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라는 것에서 답을 찾으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다름의 인정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절대 정의가 되었다. 이제는 거의 無所不爲의 가치로 굳어졌다. 하지만 이 말이 절대적인 정의일까? 예를 들어 성전환자(Transsexual)의 경우, 개인의 好, 不好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뇌의 구조나 특정 부위의 발달 차이로 인해 그렇게 결정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섭리와 다르게 그렇게 태어날 수 있도록 허용한 신의 실수라고 생각되기에, 이는 그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그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는 어떤가? 그들 역시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도 다름을 인정해야 할까? 나는 이 질문의 핵심은 도덕과 상식의 인식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전환자는 사회에 직접적인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 일부 사람이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사회의 절대 해악이라 보긴 어렵다. 따라서 그들의 다름은 인정되어야 하며, 실제로 사회는 점차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다르다. 이들은 사회와 공동체에 커다란 충격과 해를 끼치며, 그들의 태생, 성장 환경, 교육을 고려하더라도 용납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다름’이라는 방패를 씌워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사이코패스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은 ‘다름의 인정’이라는 명분 아래, 상식을 무너뜨리는 이들을 지지하는 현상을 보면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 자문하게 된다. 괴벨스였던가. 선동가들은 상대가 스스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의심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조된 목전까지 와있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다름의 인정’이라는 훌륭한 가치를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문득 몇 자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