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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y 16. 2022

응봉산 문화 안내 표지판 유감

수년 전, 매일 방배동으로 출근하던 시절이 사 년간이나 있었는데, 봄이 되면 먼발치로 산전체가 노란 개나리도 뒤덮인 산이 보였다.


나지막하나 꽤 규모가 되는, 한편 단아하게 앉아 있는 아담한 돌산인데 멀리서 보는 그 아름다움에 운전 중에도 눈을 떼지 못하며 즐겨 바라보곤 하면서, 한번 가봐야지 하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지난주에 처음으로 가보았다. 개나리가 피는 시기를 맞추어야 하는 것과, 주말은 인산인해라는 소문에 평일을 택하고, 화창한 날을 정하였다.  


과연 온산 개나리가 내뿜은 아련한 노란색 아름다움과 사통팔달로 서울시내가 보이는 너른 풍광으로 인하여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응봉산이라고 하였다. 응봉산은 조선시대 왕들이 매사냥을 하던 자리라고 하던데, 구청에서 여러 유래를 기록한 안내간판을 세워놓았다. 그런데 어느 한 간판에, '치우'를 설명하면서 '중국의 전설 속 군신'이라고 쓰여있었다. 이게 맞는 말인가? 내가 아는 생각과는 다소 달라 의문이 들었다.     



'치우(蚩尤)'는 현재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 응원단인 붉은 악마가 공식휘장으로 사용하고 있고, 우리의 역사가들의 기록(고려-조대기/진역 유기, 조선-규원사화)에는 단군 이전 환웅시대의 천황(규원사화에 의하면 14대 자오지 환웅)으로, 중국이 자기들의 시조로 치고 있는 '황제(黃帝) 헌원'과 탁록의 들판에서 싸워 연전연승을 한 전쟁의 신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 측은 사마천이 사기에서 '치우는 구려의 임금인데, 황제헌원이 죽였다'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마천도 중국 인물이 아니라는 것으로 서술한 것이다.  


황제헌원이 치우를 죽였다는 것도 중화 관점에서 서술한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보고 있고, 오히려 황제헌원은 치우가 무서워 일생 베개를 높이 베지 못했다고 한다.      


더구나, 김치나 한복 등 조금 좋아 보이는 것은 전부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는 중국이, 붉은 악마들이 휘장으로 사용해도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치우는 적어도 중국 한족은 아님을 중국도 인정하고 있고, 동이족의 인물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신화적 고대사이니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러나 '치우'를 중국의 인물로 단정한 성동구청의 안내판에 대해 며칠을 생각하다가,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민원신청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요즘의 행정처리는 정말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접수부터 부서 간 이첩, 처리 예정일자를 문자로 수시로 보내주더니, 처리 약속한 날짜에 결과를 다음과 통보해 주었다.     


’ 귀하께서 말씀 주신 안내판에 대하여 역사적 논란이 없도록 수정토록 하겠으며, 앞으로 안내판 설치 시 올 바른 역사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신중하게 검토하겠습니다. 다만, 해당 안내판 정정을 위하여 문구 재인쇄 등 수정에 다소 시일이 걸리는 사안으로 즉각 처리하지 못하는 실정임을 널리 이해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내가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지만, 딸내미는 내게 가슴을 찌르는 한마디를 던진다.     


아빠 그러다 동네 진상되는 거 아니냐!”   (2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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