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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이 두려워

by 동틀무렵

광복 80주년의 해다. 더 뜻깊은 해에 작년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날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79주년인 작년,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국적이 어디인가를 두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일의 시초는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몇 달간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때, 한쪽은 당시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했고, 또 한쪽은 대한민국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이 국적이라는 쪽은 나라가 있었으면 독립운동을 했겠느냐는 논리였다. 그들은 친일파, 매국노, 토착 왜구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반대쪽은, 임시정부가 있었기에 당연히 대한민국이 국적이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불법으로 강점한 일본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결론도 없이 시간이 가면서 조용해지고 있지만, 아직도 사상 파악의 한 도구로써 사용되고 있다. 마치 근세 일본이 천주교를 박해할 때, 예수의 얼굴을 밟고 지나가도록 하여 신자 여부를 파악한 것과 같이, 답변에 따라 친일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어느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원이 후보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후보자는 대한민국이라고 시원하게(?) 답변했고, 그 의원은 크게 만족해했다. 그 한마디면 족했던 모양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묻지도 않았다.


나는 그때 그 논쟁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나라가 없었기에 독립운동을 했다는 주장도, 강제적 합병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幼兒 수준의 말다툼 정도로 보였다. 이 난해한 문제에 깊이 있는 지식이나 은유로 주관을 말하는 인사는 보지 못했다. 단칼에 일본이 국적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역사 인식이 얕아 보였고, 임시정부가 있기에 대한민국이 국적이다,라는 쪽의 말에도 문제는 있어 보였다. 이 논리에는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십 년간의 국적은 어디인가,라는 문제가 있지만, 이런 논리 허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따지지 않는다.


이 논쟁은 가치가 있을까? 80년이 지난 지금에 이런 논쟁이 있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실에 따른 올바른 인식이 아닌, 감성과 정파 싸움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양쪽이 서로 단답형으로 딱 부러지게 답해야 각자의 편에서 환호를 받고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비난을 받기에 온당한 논리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역사가들도 입을 닫고 있다. 답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이번 광복절에는 이 논쟁은 다시 불거지지 않았다. 그런데, 또 다른 일들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독립기념관장의 광복절 기념사 내용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 또한 맥락 전체를 읽기보다, 한 구절을 빌미로 자기편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려는 이전투구의 모양새다. 아직도 일부 언론사는 흥분하고 있지만, 기념사 전문은 싣지 않는다. 간신히 그의 블로그를 찾아서야 읽어볼 수 있었다. 나는 오히려 기념사의 두 번째 꼭지에서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의아했다.


하필 이날에 열린 ‘국민임명식’이라는 행사는 국민통합이라는 애초에 목적과 달리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을 두 쪽으로 갈리게 했다. 문법 따지기 좋아하는 국어학자라면 행사 이름을 따져볼지도 모르겠다. ○○임명식의 의미는 ○○을 임명한다는 뜻이다. 장관 임명식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는 행위이듯, 통상적으로 받는 주체로 이름 지어진다. 그렇다면 국민임명식은 우리를 국민으로 임명하는 것이라는 뜻인데, 행사 내용은 반대다. 주체와 객체를 떠나서 어쨌든 국민통합과는 멀어 보였다.


국가기록원이 주관한 특별전시회에서는 편집과 조작한 사진을 버젓이 전시했다. 들통이 나자 자료가 부족해서 그랬다며 둘러대었다. 덕수궁에서 진행 중인 항일유산 특별전에서는 임시정부의 의정원 인물만 기록했다. 임시정부 首班의 기록은 아예 없어서 이승만, 박은식, 이상룡, 이동녕 등 앞서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많은 지사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한 인물만 두드러졌다.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개념인 국민주권 같은 용어를 써가며 굳이 의정원 중심으로 전시한 그 기획 의도에 갸우뚱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민족사에서 1945년 해방의 그날만큼 온 겨레가 거리로 뛰쳐나와 마음껏 기쁨을 누렸던 날이 또 있었을까. 물론 고달픈 억압의 시간이 오래이었기에 거기에서 벗어난 기쁨도 그만큼 컸을 것으로 생각하니 마냥 기쁜 날이라고만 표현하기도 애매한 날이다. 어찌 되었건, 이 기쁜 날을 온전히 기리고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뜻을 새겨야 마땅한 날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정치꾼들의 제멋대로의 역사 해석과 권력을 잡은 쪽의 뜻대로 역사를 윤색하여 지지층을 부추기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제 광복절이 다가오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가슴이 조마조마할 것 같다. 과거를 되씹고 미래로 나아가기보다, 그때의 혼란했던 이념 대립만을 우리는 재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역사를 알고자 함은 미래를 통찰하기 위함이다. 취약한 인간의 기억을 고려하면, 더욱더 진실의 확증은 오로지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데, 갈팡질팡하는 역사에 미래마저 가물가물할까도 걱정이다.


참, 내게 그때 민족의 국적을 묻는다면, 만해 한용운의 시를 읊어 답을 대신할까 한다. 만해는 ‘님의 침묵’에서 이렇게 말했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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