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여름이 되면, 아련하게 귓전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많은 이들은 동무들과 강에서 멱감던 추억이나 수박, 참외 같은 과일의 상큼한 향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오수에 몸이 노곤하게 가라앉을 때 사방에서 들려오던 여름의 소리가 그리워진다.
여름에만 유독 그런 소리가 생각나는 것은, 활짝 열린 계절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과학적으로도 온도가 올라갈수록 소리의 전달 속도도 빨라져 더 멀리 퍼져나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공기조차 나른해질 때면, 바람에 잎사귀가 흔들릴 때의 소리처럼 수런수런 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것이다.
신작로 건너에는 제법 큰 제재소가 있었다. 거기서 들려오던 통나무 켜는 소리는 여름만 되면 내 귀를 맴돈다. 쓰르렁 쓰르렁. 단조로우나 리듬이 있는 소리는 신작로를 건너서 뒤란을 돌아 내 귀로 들려왔다. 톱날이 내는 마찰음은 마치 밀물과 썰물같이 드나든다. 커졌다가 작아지고 높아졌다가 낮아지고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 그러다 갑자기 뚝 끊어지고 또 이어진다. 톱날이 닿을 때의 첫 파열음은 통나무 중심의 정점까지 크레셴도로 올라가서는, 다시 데크레셴도로 점점 낮아졌다. 그 소리에 나는 정신이 혼곤하게 가라앉고 스르륵 오수에 빠져들곤 했다. 그 리드미컬한 소리에는 마치 소나무의 짙은 향기도 실려 오는 듯했다.
새벽이면 생선 장수가 골목길을 지나가며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그의 굵고 우렁찬 소리는 아침을 깨웠지만, 자전거 바퀴 체인이 뒤따라 짜르르 짜르르, 하며 지나가는 소리에 다시 노루잠에 빠져들었다. 그 소리는 잔잔하게 깔린 기타 가락처럼 골목에 낮게 깔리며 퍼져나갔다. 마음이 평안해지는 낮은 소리, 조곤조곤 불러주시던 어머니의 자장가였다.
사방이 노곤해지는 오후쯤이면 기차역의 커다란 스피커에서는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다. 멀리 떨어진 우리 마을에도 그 노래는 들리었다. ‘하와이 연정’이나 ‘해변의 여인’ 같은 노래에 깔린 경쾌한 하와이안기타 소리에, 나는 상상으로만 그리던 미지의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시절이 그래서였을까. 지금에야 소음일 텐데 그때는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던 그 하와이안기타 소리에는 파도와 바람이 실려 있었다.
마을 앞으로는 기차가 무시로 달려오고 또 지나갔다. 기차는 얼추 십 리나 떨어진 이전 역에서부터 낮은 소리를 보내왔다. 너무나 낮은 그 소리는 물이 끓을 때 맨 처음 작은 물방울이 터지는 소리 같았다. 우주가 태어날 때 소리의 시원, 태초의 첫소리가 있었다면 그런 소리일 것이다. 그 한없이 낮으며, 있는 듯 만 듯한 소리가 마침내 우레같은 소리가 되어 귓등을 훑고 지나가면 내 나른함은 퍼뜩 깨어났지만, 육중한 쇳덩이가 부딪치는 그 소리의 그리움도 깊어만 간다.
정오가 되면 경찰서 뒷마당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작은 도시의 한복판, 철탑 위에 우뚝 선 네 개의 스피커가 내지르는 고함은 한낮의 고요를 파열시켰다. 지금의 민방위 공습경보와 같은 소리였지만, 그것은 긴장과 불안을 불러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밥은 굶지 말라는 온정어린 소리가 아니었을는지. 그 소리에 모두가 일손을 놓고 마치 ‘밀레의 만종’ 속의 농부같이 허리를 일으켜 경건한 마음으로 한 그릇의 밥을 찾아 어디론가 찾아갔다.
한바탕 소나기 내릴 때, 폭포 아래 있듯 했던 그 세찬 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현란한 기타 연주 같은 빗소리에 중간중간 내려치는 천둥소리는 그에 어울리는 드럼 소리였다. 이윽고 하늘의 공연이 끝나면 땅에서는 페트리코 향이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뒤이어 똑. 똑. 똑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는 왜 그렇게 청아했으며, 마음을 평화롭게 했는지.
골목은 늘 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아-스케키 일원에 두 개.” 능청스러운 외침이 지나가고, 뒤따라 엿장수의 철컥거리는 가위질 소리가 이어졌다. 엿장수는 가위질에 장단을 맞춰 품바 소리로 신명을 돋운다. “할매 할배 싸우다가 곰방대가 부러진 것, 처녀 총각 키스하다 금 이빨이 부러진 것….” 엿판에 정을 대고 딱딱 엿가락을 끊어내는 소리가 들리면 기어이 헌 고무신이라도 찾아야 한다. 품바 공연이 사라지기 전에 달려 나가야 하는데, 빈 병도 헌 고무신도 없을 때의 그 씁쓸함이여.
달그락달그락, 나무 ‘게타(げた, 왜나막신)’의 발걸음 소리도 골목을 지나갔다. 판자를 발 모양으로 자르고 밑창에 홈을 파서 굽을 흉내 내고, 타이어 조각으로 끈을 만들었던 나무 게타였다. 달그락달그락 게타 발걸음 소리도, 옆집에서 설거지하다 양푼이 떨어지는 소리도 여름의 기억을 채우는 생활의 음악이었다.
이윽고 담장의 호박잎에서 푸른 생기가 빠지고, 풍뎅이가 뒤집힌 채 붕붕거리고, 가는 길 발끝에 툭 떨어진 매미가 배를 뒤집고 왱왱거리는 소리에, 이 여름도 끝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떠나는 마지막 몸부림, 너희들은 다음 계절을 즐기라는 몸짓에 어린 마음에도 뭇 생명은 끝이 있음을 알았던가.
햇빛이 쨍쨍한 여름날, 한줄기 소슬한 바람이 피부를 스치면, 제재소에서 들려오던 나무 켜는 소리, 경찰서의 사이렌 소리,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들린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리워 여름만 되면 내 귀가 반응해 저절로 그 소리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