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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목걸이

by 동틀무렵

내 가방 안에는 아직도 회사 시절 사원증이 들어 있다. 과거에는 회사를 그만두면 반납했었는데 요즘은 정보만 삭제하면 플라스틱 조각일 뿐이니 굳이 두고 가라고 하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그것이 플라스틱 껍데기 일지라도 내 지난 시간이 거기에 압축되어 있는 것 같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가끔 그 시절이 그립지만, 사실 그때는 ‘개 목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회사원은 누구나 개 목걸이를 두르고 산다. 그것은 주인의 사랑과 먹이를 위해 목줄이 채워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개의 목걸이와 같은 것이었다. 특히 24시간을 긴장하며 보냈어야 했던 나는 두 개의 개 목걸이가 있었다.


그 첫 번째 목걸이는 이동통신 기기였다. 그것은 ‘삐삐’라는 물건을 거쳐, 지금의 휴대전화기로 진화하여 아예 몸에 붙어 있는 듯, 나를 속박하는 개 목걸이가 되었다. 연락이 안 되는 잠시의 틈도 허용되지 않았고, 야심한 밤에 따르릉 울리는 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일도 다반사였으니, 나를 구속하는 개 목걸이임이 틀림없었다.


더구나 사람 간의 소통이라는 전화의 원래 기능보다, 자투리로 남은 기술로 재미 삼아 만든 ‘문자 메시지’라는 놈이 더 문제였는데, 일방적으로 문자를 쏟아 보내는 그 특성이 내 일에 딱 들어맞아, 본디의 통화 기능을 뛰어넘는 가공할 힘을 발휘하였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문자 소리에 어떤 날은 잠을 설치기가 일쑤요, 받고 싶지 않다고 받지 않을 수 없는 일방의 통신이니 개 목걸이의 위력을 더하는 놈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공격을 받으면 나름의 방어본능을 작동시키는 존재다. 스트레스를 주는 문자, 반가운 문자 등, 보내는 발신자별로 그 알리는 소리를 달리하는 기능이 개발된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이었다.


사실 휴대전화기보다 더 나를 속박했던 것은 출근 때마다 스스로 목에 둘렀던, 지금 내 가방에 있는 사원증이다. 이것이 있어야 회사에 출입할 수 있고, 구내식당에서는 기계에 갖다 대고 ‘삑’ 소리로 허락을 받아야 한 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신용카드처럼 지갑에 넣기도 하지만. 나는 화장실에서 잊고 나와 출입문 사이에 갇힌 채 누가 오기를 멍청히 기다린 경험이 있어, 와이셔츠 주머니에 사원증을 쑤셔 넣고 목에 거는 것이 버릇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사내에서는 잠시도 따로 둘 수 없는 애물단지와 같은 물건이었다. 주민등록증이야 가끔 나라의 일을 처리하거나 ‘민증 까!’ 하며 나이를 농할 때 외에는 별로 쓸 일이 없지만, 사원증은 적어도 회사 내에서는 몸 일부와 매한가지였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을 향하면서, 어떤 이는 버릇처럼 줄에 손가락을 걸고 그것을 휘돌린다. 사무실에서 늘 다다닥 키보드를 치다가 갑자기 그로부터 해방되면 손이 심심한 모양이다. 그러다 보면 캡의 연결부분이 떨어져 나가, 사원증만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오는 한 마디가 있다. “당신, 밥줄 떨어졌다!”


그렇다. 그것은 진정으로 우리의 밥줄이었다. 구내식당에서는 꼭 있어야 하는 식권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앞세워 애쓴 대가로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을 영위했으니 그야말로 진정한 밥줄이라고 해야 할 물건이었다.


한때 내가 근무했던 부서는 외부인 출입이 엄격한 장소라 보안카드가 하나 더 있었다. 사원증에 보안카드 한 장을 추가하여 목에 걸고 온종일 있으면 목 뒤로 뭉근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퇴근 후 종일 목에 매달렸던 그놈을 풀어내면 목덜미가 시원하다 못해 상쾌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은 더 무거운 것이었기에, 온종일의 압박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시원함을 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게를 내려놓을 때의 짧은 해방감도 내일이면 다시 그 ‘속박으로 들어간다는 안도감’이 없었다면 느끼지 못했으리라.


삶의 무게이며 삶을 옭아매는 것이기도 했던 그것들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매일 새벽 5시 33분(오! 삼삼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 부스스 깨어나 는 목숨에 개 목걸이를 스스로 채우며 외치곤 했다. ‘달리자!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 어떤 것이든 속박의 속성을 감춘 것은 인간의 자유를 앗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않는, 누구도 강제하지 않는 스스로의 속박도 있다.


나도 그랬던, 그런 속박과 함께했던 두 개의 개 목걸이.


하루에도 수백 개씩 오던 문자는 회사 문을 나서던 순간 끊어졌고, 지금은 어쩌다 오는 광고 문자 알림 소리에도 괜스레 설레기도 한다.


그리고…. 사원증은 속이 텅 빈 껍데기로 가방 속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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