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버스정류장에 찬 바람을 막아주는 구조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찬바람에 몸을 움츠린 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온기를 건네는 장치다. 어느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겨루듯 저마다 다른 얼굴로 만들어지고 있다. 예산이 넉넉한 곳은 알루미늄 기둥을 반듯하게 세우고 유리 벽을 둘러, 작은 집처럼 우아하게 지어 두기도 한다. 가끔 찾아가는 내 고향에도 소도시의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우람한 구조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몇 해 전 내가 사는 동네에도 그런 것이 설치되었다. 모양은 다른 데보다 한결 소박하다. 떡가래 굵기의 알루미늄 기둥(기둥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하다) 몇 개를 세우고, 두꺼운 비닐인지 아크릴판인지 언뜻 보아서는 재질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으로 벽과 천장을 대신했다. 사방이 투명하고 지붕이 뾰족해 멀리서 보면 자그마한 온실 같다. 언뜻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출입구에 붙은 이름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온기종기’라는, 참으로 어여쁜 이름이었다. ‘옹기종기’라는 말에서 온기(溫氣)라는 말을 길어 올렸을 것이다. 이름을 지은 이는 알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옹기종기’는 크기가 서로 다른 작은 것들이 고르지 않게 모여 있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들을수록 정겹고 말속에 따뜻함이 배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이 말을 입에 올릴 일은 부쩍 줄어든 듯하다.
여느 교실마다 갈탄이나 장작을 때는 난로가 놓여 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은 늘 난로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지만 지금은 난방기가 교실 전체를 고르게 덥히니, 그렇게 모일 이유가 없다. 식당 한가운데에도 난로가 있었다. 뚜껑 위 허옇게 빛바랜 양은 주전자에서는 보리차가 설설 끓고 있었다. 손님은 먼저 난로 곁으로 다가가 손을 비비며 주문을 하고 자리를 찾았던 풍경도 있었다. 식당의 난로는 사람을 옹기종기 불러 모으는 중심이었다. 방 안에는 ‘아랫목’이 있었다. 셋만 모여도 아랫목에 깔아 둔 담요 속으로 다리만 넣은 채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집 안의 ‘아랫목’이라는 말은 사어(死語)가 되었다.
지금은 겉옷이 두툼해 손이 좀처럼 시리지 않다. 그래서인지 시린 손을 감싸 줄 장갑을 낀 사람도 드물다. 지난 세월, 장갑은 선물로도 오가던 귀한 물건이었다. 발은 또 어떤가. 신발마저 두툼해져 요즘에는 발이 시리다는 감각은 거의 잊고 살았다. 우리는 예전과 달리, 시리고 춥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그만큼 ‘옹기종기’라는 부사를 불러낼 장면도 사라져 간다. 사람과 사람이 섞여 한 지점에 옹기종기 모이던 풍경은 온기가 널리 퍼지지 않던 시절의 그림이었다. 지금은 실내 어디서나 공기를 데워 공간 전체에 온기를 고르게 흩뿌린다. 두꺼운 옷과 신발은 차가운 바깥에서도 난로나 모닥불을 찾지 않게 만든다.
그러나 공간에 온기가 고르게 퍼질수록, 사람 사는 세상의 온기는 오히려 식어 가는 듯하다. 금수저와 은수저, 흙수저로 나뉜 틈에서 온기가 섞일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고급 호텔에서 우아하게 커피잔을 들고 모여 있는 풍경에 ‘옹기종기’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어딘가 어색하다. 부유한 아파트 단지에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나아가 그 안에서의 끼리끼리의 결혼을 도모한다는 이야기에, 그것을 과연 옹기종기한 모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옹기종기’라는 말은 본디 서로 나누며 부족한 것을 메우는 장면에 그 쓰임새가 어울린다. 한 줌 햇살이 스며드는 양지바른 담벼락에서 콧물이 말라붙고 볼이 발그레해진 조무래기들이 서로의 몸으로 바람막이가 된 모습에 어울리는 말이다. 아랫목의 모자라는 온기를 나누느라 발가락이 부딪치고, 남의 발에 간질간질 웃음이 터지는 모습, 그럴 때라야 비로소 말의 제맛이 난다.
인위적으로 데운 공기가 널리 퍼지는 세상에 반비례하여, 사람 사이의 온기는 점점 사그라든다. 버스정류장 ‘온기종기’에 잠시 몸을 들여놓으며, 지난 시절 옹기종기했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본다. 옹기종기 모여 나누었던 온기가 그리운 한겨울밤이다. 또 삭풍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