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은 어디부터가 몸통이고 어디까지가 꼬리인가? 이어령 선생은 아날로그를 설명하며 뱀의 꼬리를 예로 들었다. 특정 지점으로 나눌 수 없는 상태, 그것이 아날로그라고 했다. 반면 도마뱀은 다르다. 위급할 때 몸의 일부를 끊고 달아나는데, 그때 잘려 나가는 쪽이 분명한 꼬리다. 선생은 이렇게 뱀과 도마뱀의 꼬리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를 설명했다. 참으로 탁월한 비유다.
새해다.
시간은 도마뱀이 아니라 뱀의 꼬리와 같다. 시작점을 특정할 수 없고 끊어짐 없이 흘러간다. 시간은 잘라낼 수 없는 아날로그다. 태양력에서 새해란, 그 흐름 속 어딘가를 억지로 잘라 하나의 기점으로 삼은 날이다. 음력은 그나마 우주 운행을 헤아려 기준을 세웠지만, 태양력의 새해는, 어떤 지도자가 ‘모두 들을지어다. 오늘을 일 년의 첫날로 하노라!’라고 한 그날이 첫날이 되었다.
새해 아침에 설거지하고 있자니 문득 생각이 수도꼭지의 물처럼 이어졌다. (설거지는 회사를 그만둔 뒤 아내에게 부여받은 나의 새로운 일이다.)
‘어제저녁에도 밥을 먹고 설거지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의미에서 유난히 부산을 떨면서 주방 청소를 꼼꼼히 한 것만이 여느 날과 조금 달랐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서 밥 먹고 설거지한다. 새해 첫날이라고 떡국을 먹어서인지 설거지할 그릇이 조금 적다는 점만 어제와 다르다.’
설거지를 마치고 젖은 손을 비비며 책을 집어 들고 보니 강아지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주 누워서 책을 읽는 아끼는 매트 위에 더 아끼는 녀석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녀석을 보니 또 생각이 일어났다.
‘이 녀석은 어제도 새벽부터 밥 달라고 나를 깨웠고, 오늘도 정확히 6시에 밥 내놓으라고 내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어머니가 보셨다면 기절하셨을 거다) 배를 채운 녀석은 어제처럼 오늘도 내 옆에서 느긋하게 아침잠에 빠져 있다.’
이런! 새해라는데 어제와 같은 오늘이 이어지고 있다. 뭔가 아쉽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든다. 그 안도감은 이렇게 흘러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지만 이런 나날이 이어지기 것이 소망이라고 말하면 새해에 미안하다. 우주 평화를 위해 이 한목숨 기꺼이 바치겠다는 것과 같은 비장한 결심까지는 아니더라도, 금연이나 운동 같은 작은 다짐 하나쯤은 있어야 예의일 것 같다. 억지로라도 의미를 찾아봐야 한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만나면 인사를 한다. 우리 집 강아지도 산책길에서 친구를 만나면 코를 대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러나 헤어질 때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여기저기를 킁킁대다 눈길도 주지 않고 돌아서 표표히 자기 길을 간다. (헤어질 결심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작별 인사를 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오로지 인간만이 미래를 생각하고 내일이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다. 반드시 있다. 장난감 사달라고 앙앙 우는 아이에게 “내일 사줄게.” 하면 금세 울음을 뚝 그친다. 죽일 듯이 협박하는 악덕대부업자도 내일 꼭 갚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조금은 누그러지고 순해진다. 다이어트나 담배를 끊는 그 어려운 일도 내일부터 해야지 하면, 오늘을 마음 편히 보낼 수 있다. 여차하면 모레도 글피도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내일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을 유예해 준다. 이렇게 내일이면 뭔가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희망을 내일이라고 달리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세월을 조금 살아보니 알게 되었다. 내일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나 막연한 것인지를. 내일이 되면 그것은 언제나 오늘이 되어있었고, 내일은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었다.
내게도 그런 내일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일을 담보로 한 결심과 다짐이 얼마나 나를 자주 속여왔는지를. 내일이 나를 속인 것이 아니라, 내가 내일을 속여왔다는 것도.
그래서 이제는 다짐하지 않으려 한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는 시간’도 충분한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해에 소소한 다짐조차 하지 않은 채, 이 무덤덤하고 밍밍한 일상의 반복에 새해의 의미를 두려는 마음은 나이 탓인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