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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y 30. 2022

술I – 갈구(渴求)하다

어느 유명한 미식가의 이력에,

‘어릴 적 아버지의 술 심부름 도중 막걸리를 몰래 먹어 보고 술을 배웠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누구나 있었음직한 경험에는 틀림이 없고 나도 그러한 욕구를 가졌었으니.      


어린 시절, 집 부근에는, 

커다란 장독 안에 늘 희뿌연 막걸리를 가득 담아놓고,

그 특유의 냄새를 진동시키며 오가는 어른들의 입을 다시게 만든 집이 있었다.     


반쯤은 허옇게 색이 바랜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를 들고 가면,

뒷집 주인은 바가지를 손목이 빠질 정도로 장독 안에 넣고 휘휘 저어서는,

주전자가 넘치도록 그 액체를 퍼부어 넣었다.


그 특유의 냄새는 구수하기도 하고, 때로는 코를 찌르기도 하고 

여하튼 말로는 표현이 적당치 않은 시골집 구들장에서 배어 나오는 아련한 그리움 같은 냄새였다.    

 

그 주전자를 들고 

어린 나이에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나름대로의 구분이 있었음인지,

한 번도 그 유명한 미식가의 행동 같은 것을 ‘결행’ 하지 못하였다.

특히 달 밝은 밤에는 주둥이에 입을 대고 한두 모금 시원하게 빨아먹고 싶은 유혹은 참지 못할 정도였지만, 그것마저 꾹꾹 눌러가며 휘영청 달빛 속에서 집으로 오곤 했다.     


특유의 냄새에 혹해 그 맛을 직접 체험하고 싶은 욕망은,

어머니께서 술도가에서 가끔씩 간식 대용으로 사 오신 ‘아래기’(아랑의 방언)로 부르던, 

술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에 ‘단것’을 타 먹음으로써 그 갈증을 해소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그것은 배고픈 시절의 간식이며 내남없이 먹던 먹거리로, 

알코올이 다소 남아 있어, 많이 먹으면 얼굴이 불그레 해지기도 하였고, 기분도 알딸딸 해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가끔은 또래들 사이에서 좀 덜 떨어진 이야기를 내뱉은 친구를 보고는,

‘아래기 먹고 취했나?’하는 말로 타박을 갈음하기도 하였다.         


 

수십 년 전 어느 겨울날, 아흔을 바라보시던 할머니가 세상을 뜨셨다.

일찍이 홀로 되시어, 자식들 건사하시며 곱게 늙으셨던 할머니는,

자리보전 한 달여 만에 험한 모습 보이시지 않고, 그 외모만큼이나 깔끔하게 세상을 버리셨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이별을 하러 선산에 올랐을 때, 나는 문상객이나 산역(山役)하는 일꾼들에게, 

술을 권하고 안주를 대접하는 허드렛일 하기 딱 좋은 열여덟 살이었다.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카! 감탄사를 연발하는 손님이나, 일꾼들을 보며, 

나도 한 사발을 쭉 마시고 싶은 유혹을 참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 욕구는 너무나 강렬해서 

그 우윳빛 액체와 피어오르는 김이 내 코를 스칠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지금도 먹을 것을 갈망한 가장 남아 있는 기억을 꼽으라면, 

첫 번째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던 그때의 막걸리 한 사발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나의 욕구는 강렬했으나,

어른들 앞에서 술을 먹도록 허락되지 않던 어정쩡한 나이와,

나의 도덕관은 마찬가지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년기에 갈구하던 그 '음식‘을 드디어 마음껏 먹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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