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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y 31. 2022

술II – 학습(學習)하다

고향을 떠나 도회지로 나간 초봄의 어느 날, 

같은 동문 선배들이 관례로 베풀던 환영식 행사가 나의 술의 시작이었다.     


환영회를 시작하자마자 영문도 모른 체,

한 놈씩 선배에게 호명을 당해, 옆방에 끌려가서는 엉덩이에 몽둥이찜을 당한 후,

칠팔 년 대선배들부터 밑으로 나름대로의 위계를 갖추어 줄지어 앉아있는, 테이블 제일 앞에 서서,

중국음식점에서도 제일 크다는 짬뽕 그릇에 철철 넘치도록 채워진 막걸리를 

입도 떼지 않고 한 번에 다 들이켜야만 했다.     


까짓 몽둥이찜쯤이야, 십 년 이상에 걸쳐 단련된 것이었으나.

아무리 유년시절부터 갈구하던 음식이라도

그 많은 양을 한 번에 목구멍 속으로 넘긴다는 것은 보통의 고역이 아니었으나, 

그래도 타고난 바탕이 있었는지 깨끗이 비울 수가 있었다.     


개중에는 입을 떼었다가 두 번, 세 번 같은 고역을 치르는 놈도 이었고,

어찌어찌 다 부어 넣고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바로 그 희뿌연 액체를 마치 분수처럼 발사하는 다이내믹한 한 장면을 연출하는 놈도 있었다.   

       

그러나, 

그 액체는 처음 경험하던 나에게 민망한 경험을 시키며 내게 경고를 주었으니.     

신고례가 끝나고 자유롭게 선배들이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선배들의 인생과 사랑과 학교생활의 경험을 체화시킨 후,

치사량 정도의 그 액체의 흡수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정신으로 자취방에 돌아와 누었다.     


잠시 후,

어릴 적 외갓집 갈 때 처음 타 보았던, 

시골버스의 울렁증 정도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좀 전의 신고례에서 다이내믹한 장면을 연출하던 동기 놈과 같은 액션을 재연하고야 말았다.     

     

마치,

처음 경험한 음식물에 내 몸이 적응하기 위한 어떠한 명반 현상과 같은 경험을 체득한 후,

나의 술에 대한 흡수 능력은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여, 

막걸리와, 고량주와 싸구려 국산 보드카까지 섭렵할 지경에 이르렀고,      

다만 비용상의 문제와 유년기부터 몸에 베인 어른들의 가르침인지, 

특별한 행사가 아니고서는 내가 먼저 술을 찾은 적은 별로 없었노라고 지금도 고백할 수 있다.     


방학이나, 고향에 내려갔을 때, 

군입대 가는 친구 놈이 있거나,  

내게는 별 의미도 없는 성탄 전날에 괜히 들떠 모여서,

고량주 두병에 막걸리 한 됫박 정도의 엄청난 양을 마신 날에도,

마지막까지 술 취한 놈들을 건사하여 보내고는 조용히 귀가하여, 

한참을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조곤조곤 대화를 주고받아도,  

식구들 어느 누구도 내가 술을 먹었다는 것을 모를 만큼 절제된 행동도 나와 함께 하였다.


    술은 입으로 오고 

    사랑은 눈으로 오나니

    이 둘은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리의 전부이다

    나는 오늘도 술잔에 입을 대고

    그대 바라보며, 한숨짓는다"

      - A Drinking Song/예이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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