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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Jun 03. 2022

술IV - 전쟁(戰爭)하다

 - 술은 전쟁이다.

   그러나 때로는 두 개의 사물을 흐물흐물 용해하여 붙게 만드는 순간접착제 같은 것이다.


술로서 전쟁을 자주 치렀어.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치열했던 전투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해.     


당시 내가 근무하던 전방에서는 처음 대하는 큰 판이 벌어졌는데, 

자주 들락거린 끝에 큰판의 판돈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드디어 일전을 겨루던 날이 왔어.

일합(一合)을 겨루어 보자는 것은 상당히 우리에게 호감이 있다는 좋은 신호라는 거지.     

그 사람들이 판돈을 최종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게임의 룰을 정하는 파워 정도는 가지고 있었어.     


아군은 나를 포함하여, 셋! 적군은 모두 아홉.

 - 아군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나, 전쟁이니 적군으로 부르는 것이 낫겠어.      

     

적군의 화력이 개개인이 모두 가공할 만하다는 것은 자주 들은 이야기여서,

우린 전투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였어.

준비라고 해봐야 전쟁의 후유증이 덜하다는 조그만 병에든 특수한 음료를 미리 먹은 정도였지만.      

적군의 수장이 그날 갑자기 일이 생겨 자리에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전의를 약간 상실하게 하였지만, 

졸병들의 힘이 때로는 더 클 수 있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지.      


전투장소는 적군이 알아서 정하라고 했어. 

그게 전쟁의 예의 중의 하나였거든. 전투의 종류와 방법까지도 포함해서 말이야.        

  

약간의 긴장 속에서, 조금씩 입을 축이며, 약간의 덕담과 늘 전쟁 같은 인간사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드디어 적군의 포화가 먼저 터졌지.     

 ‘팀장님! 화력도 별로 이신 것 같고 별로 마음에 안 드시네.’

대부분 연장자이면서 전투 경험이 나보다 많은 적군들이 아주 편하게 말을 하며 한방을 쏘더군.  

   

‘아! 예. 죄송합니다. 제가 좀 약해서.. 그럼 한방 쏘겠습니다.’     

사실 난 화력이 그리 센 편이 아니었고, 날마다 야간전투를 수행 중이라 화력 상태도 말이 아니었지.     


그러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몸 안에서 전의가 더 맹렬하게 불타올랐어.

또 기어이 일을 성사시키려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그래 오늘 죽자!     


여덟 명의 적군을 향해 차례로 일합을 겨루었어. 

부하 병사를 전장에 먼저 나서게 할 수는 없어서 내가 먼저 전투 개시의 신호탄을 쏴 올린 거지.

속사포의 총알이 난무하듯 거의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지.

각각 일합으로는 부족하여 한 번 더 일합을 겨루었지.

이합을 겨룬 끝에 나는 무려 열대여섯 발의 총알을 맞은 셈이었어. 순식간에.

아마 십 분의 시간도 채 흐르지 않았을 거야.     


조용히 화장실로 가서,

아까 받은 총알들을 다시 밖으로 꺼내었어.

내 몸 안으로 잠시 들어온 것이니, 내 보내기도 쉽더군.     


서로에게 인사는 건넸으니, 이젠 굳이 형식을 갖출 필요는 없었지.

다시 한 발을 장전하니 몸이 촉촉해지더군. 맹물과 같았어. 

내 신체에 그 요상한 물질의 근원이 쫙쫙되는 흡수되는 기분이었지.     


어지러이 총알이 난무하는 가운데, 시간이 지나자 상대의 화력도 조금씩 무디어지더군.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음이 적군과 다른 점이었지.


‘너희들을 나의 아군으로 만들리라. 그래서 진짜 전쟁에서 승리하리라.’    

      

승부가 나지 않으니 자리를 옮겼지.

소총으로 겨루던 전쟁은 더 치명상을 주는 기관총으로 바뀌고.

총알 맞은 몸들은 점점 흐느적거리면서도, 

전쟁의 격렬함을 북돋우는 군가 속에서 더욱 치열해져만 갔어.     

2차전도 승부가 나지 않았어.

사실 오늘 나의 계획은 거기까지였었고, 그 이후는 그때의 상황에 따르기로 마음을 먹고 임한 전투였지.   

  

그러나 적군은 3차전을 제안하더군.

자기들이 자주 가는, 싸우기 좋은 전쟁터가 있다고.

아군 한 녀석은 막사로 돌려보냈어. 원래 전투력이 약한 녀석이었거든.      


가자고. 가! 죽기로 마음먹었는데. 

죽기로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데.

그래야 아군이 된다면 어딘들 못 가리.     


가는 중에 적군들은 이리저리 무전을 치더니 적군들을 더 불러내어 병력을 충원하더군.

내 적들이 아닌, 옆 부대에 소속된 병력들이라더군.

새로이 온 적군들도 벌써 총상을 많이 입었는지 

전쟁 중임을 잠시 잊고 처음 보는 나를 끌어안기도 하고, 볼도 비비고 난리더군.    

 

약점을 보이지 말아야지. 정신을 다잡으며 치열한 교전을 또 벌였어. 

무기는 마찬가지로 농도가 진한 기관총이었어.

난 사실 기관총을 좋아하지 않아.

남들은 다음날 총상의 후유증이 덜하다고 좋다고 하더라만, 나는 별로야.

다음날 위속이 찢어지는 듯한 후유증이 심하기 때문이지.     


이젠 전투도 클라이맥스를 향해가고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야.     

‘모든 적군들을 다 없앨 수는 없다.

 상대 전투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몇 명과 나 혼자서 조용히 이 전투를 마무리해야 된다.

 나머지들은 어떻게 하면 조용히 이 전쟁으로부터 해방을 시키고 평화를 주어야 할까?‘    

 

평화협정을 하던, 전쟁 종식 선언을 하던, 앞으로 나와 계속 마주칠 힘 있는 세 명만 골랐어.

그중에서도 가장 화력이 센 한 병사에게 조용히 다가갔어.

부상이 심각하니 먼저 전쟁터를 빠져나가겠다고 선언하라고 했지.

그리고 나와 따로 담판을 지을 장소에 가 있으라 했어.          

나도 잔병들에게 전쟁이 종식되었음을 알리고 서둘러 회담장으로 가고자 했지.


그러나 그것도 쉽지는 않더군.

더 전쟁을 하고자 하는 잔병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기도 힘들었지만, 역시 적은 내부에 있었어.     

평상시에도 총상을 조금만 입으면 앞뒤 분간이 잘 안 되는 아군 녀석이

낌새를 채고 회담장에 같이 가겠다고 난리인 거야.     

‘야! 인마. 이건 놀이가 아니고 전쟁이야. 그만 빠져!’     

총상을 입으면 더 힘이 세지는 모양이야. 버티는 녀석 때문에 힘이 들었어.    

 

‘야! “무대리”!  (*무대리는 그 당시 유명했던 직장애환 만화의 주인공이야)

 넌 내일 나한테 죽었어. 넌 연말에 평가 무조건 D야. 내 있는 이상 진급도 없어.‘

  - 그렇지만 다음날 아침 난 이렇게 말했어. '무대리! 어제 수고했어!'    

 

이러한 격식이 필요한 전쟁에 임하면 품위를 갖추어야지.

전쟁의 승리에 목마른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지나가는 지프에다가 ’무대리‘를 욱여넣어 버렸지.

존재 자체가 전쟁이며, 도처가 전쟁터임으로 늦은 시간에는 총상을 입은 부상병을 싣고 다니는

지프들이 전쟁터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어.        


  

회담장은 세 번의 전쟁터보다 좀 더 우아하더군,

은은한 불빛이 교교히 비추고. 삭막한 전장에도 꽃들이 피어났어.

꽃들이 가만히 앉아 사각사각 과일 깎는 소리에, 나도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더군.     

오늘의 교전에 약간은 감동을 받은 적군들이 먼저 말을 꺼내더군.     


‘앞으로 당신이 치를 진정한 전쟁에 힘이 되어 주겠노라고.

꼭 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당신 편이 되어 주겠노라고.‘     


평화무드에는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지.

말로써 먼저 상대에게 화답하고, 같이 끌어안고 목청껏 군가를 불렀지.     

또 한 번 치열한 교전을 치르며, 군가들을 불러대더니,

적군-아니 이젠 아군들이지-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쓰러지려 하더군.

한두 명은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더군. 

총상인지 졸음인지는 모르겠어.     


이쯤에서 나는 먼저 사라져 주는 것이 맞아.

조용히 밖으로 나와서 회담장의 주인을 찾았지.

회담장을 빌리고, 총알과 군가를 부른 대가를 치르고 

주인에게 뒷일을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지. 그다음은 나도 몰라.         

   

근 열 시간 이상의 전투 끝에 나도 평화를 찾았어. 

막사 부근에 오니, 두어 시간만 있으면 새날의 해가 뜨는 시간이었어.

동녘 하늘에 별이 총총하고,

내가 체력 강화훈련을 하러 자주 가던 600 고지 능선 위로 유리알 같은 달이 쨍쨍했어.     

‘아! 이 G랄을 하고 살아야 하나?’     


그러나 마음을 다 잡아먹었어.          

그 얼마 전 다녀온 전투력 강화훈련의 교관이 이렇게 이야기하더군.     

자기도 얼굴을 알려야 할 때나, 큰판이 벌어지면 몸을 던져 전쟁을 치르는데,

거울 속에 비친 흐느적거리는 자신을 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더군.

    

‘그래. 나 자신아! 오늘도 수고했어, 잘했어.

 이번 일만 잘되면 내가 너에게 보상을 해주지.

 내가 갖고 싶던 뭐하나 살 거야.

 내가 하고 싶던 뭐하나 할 거야.‘ 

  - 홀로 여행을 갈 거야.

    남도 바닷가를 거닐고 낯선 포구에 앉아 수평선에 비끼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소주 한잔 할 거야.     


이렇게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보상을 한다더군.     

오로지 조직에의 충성과 전투력 강화만 부르짖는 여느 훈련과는 달리 

그 교관의 인생 강의는 내게 감동을 주었고, 여태껏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한 강의였어.    

 

같이 입소한 교육 동기들 대부분이 강의 내내 나처럼 가끔씩 울고 싶었다더군.

요즘도 힘들 땐 가끔씩 그때 느낀 감동을 글로써 정리해놓은 파일을 열어 보면서, 

좀 더 인간적으로 살고자 하지. 잘은 안 되지만. 

안 되는 이유는 현실이라는 것이라는 것은 다 알겠지?     

           

그래도 다음날의 부대 복귀에 늦을 수는 없었어.     

점심때쯤 맞추어 아군이 된 적군들의 막사에 찾아간 거야.

부상이 심각할 텐데 매일 먹는 짬밥을 먹게 할 수는 없잖아?

전날의 전쟁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시킬, 얼큰한 특별한 뭐라도 같이 하며,

전쟁 끝에 찾은 평화협정에 감동(?)의 마침표를 찍고, 

전날의 조금은 민망한 상대의 경험을 뇌리에 콱 박아 놓아야지.     

그래야 내가 마지막 승리를 할 수 있지 않겠어?     

     

그런데 아군이 된 적군의 막사가 휑한 거야. 

전날 요행히 전쟁터에 나타나지 않아 부상을 입지 않은 연세 지긋하고 사람 좋은 

적군의 수장 혼자 너털웃음을 지으며 나를 맞이하더군.     

  ‘아니. O팀장! 어제 우리 애들 어찌했기에 이 지경 만들어 놨어?’     

핀잔 비슷했지만, 별로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지.     


네 명은 휴가를 핑계한 탈영이었고, 

네 명은 부대에 복귀는 했는데, 어느 구석진 곳에서 취침 중인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없는 거야.     

나 혼자 일개 분대 한 개를 완전히 초토화시킨 거지.    

       

그래서 최종 승리했냐고?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궁금할 것 같아 해야겠어.

내가 그 부대를 떠나고도 열 달이나 지난 후 승자가 결정되었는데, 

졌어. 0.1점 차이로 졌다더군.     


우리와 겨루던 진짜 적군이 너무 강한 거지. 

우리보다 원래 기본 전투력만 열 배는 되었어. 화기도 병력도.

그러나 원래 적의 영토였으니, 나는 손해 본 것은 아니었어.


그나마, 그런 기본 전투력의 차이를 턱 밑까지 추격했다는데 나의 역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자위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했어.


그러나 그때 적군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힌 것인지,

아니면 그날의 전투의 경험으로 우리의 전투력이 상승되었는지,

바로 이어진 더 큰판에서는 우리가 이겼으니 후회는 없어.      

    

그때 아군이 된 적군들은 내가 타부대로 온 이후에도 가끔씩 무전으로 교신을 주고받다가, 

시간이 지나니 뿔뿔이 헤어져서 생사도 모르는 전우도 있어.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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