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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Jun 05. 2022

술V – 소통(疏通)하다

꼰대들을 위한 변명

조직에서의 음주의 가장 좋은 핑계는 ‘소통’을 빙자하는 것이다.


사회생활 초년병 시기에 현장근무를 했는데, 당시 상사의 지론은 ‘현장은 술을 먹어야지’라는 것으로

조직문화 활성화와 내부의 소통방법의 처음과 마지막을 간결하게 정리해주셨다.     

꼰대들을 위한 변명

지금처럼 우아하게 회식을 갖는 것은 꿈도 꾸지 못 할 시절이었고, 대한민국 직장인의 대표 메뉴인, 

‘삼겹살과 소주’라면 아무도 이의제기나 불만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현장은 아무래도 뭔가 소외되었다는 느낌과 스텝부서에 대한 다소의 아쉬움이 있는 특성 때문인지, 

술자리가 나름 조직의 뻑뻑한 부분을 기름칠하는 존재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과거에 모시던 상사 한분이,

어느 날 경제주간지의 기사를 복사하여, 우리에게 한 장씩 나누어 준 적이 있었다. 

조직의 리더는 일 년에 삼겹살 삼만 점을 구워야 한다!는 강렬한 제목의 기사였다.

그 정도로 부하직원이나,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라는 주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 그분은 두주불사의 실력으로 400명의 직원과 회식하는데,

반잔씩으로 전부 다 주고받았다는 것을 전설처럼 이야기하시곤 했다.     


나 또한 직장생활 마지막 시간인 지난 3년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술을 들이켠 시간이 되었는데, 이 또한 

‘소통’을 행하는 도구로 활용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우리나라 사람만의 특성인지, 인간 모두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면전에 대고, 특히 상사와는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상사를 만나면 늘 주뼛거리고 뒤에 숨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특질이 있다.     

나는 오픈되어 있으니 아무 말이라도 맘껏 하라고 하지만, 부하직원들은 행여 찍힐라, 행여 내가 한 발언이 조직에 피해가 될까 주저하는 것인데,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백번 이해가 되는 일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한 조직과 구성원들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다니면서, 무기명 대화를 통해 그네들의 속마음을 끄집어내고, 다독이고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는 항상 소주 한잔으로 마무리되었다.

한 번에 적게는 스무 명, 많게는 사오십 명.     


자리를 옮기면서 반잔씩 주고받아도 얼추 소주 세병은 먹어 버린 결과가 되었고, 그다음에는 술이 술을 먹은 그런 꼴이 되니 한자리에 얼추 다섯 병은 먹었지 않았을까 한다.

술이 술을 먹더라도 그 친구들의 속마음들의 일부라도 얻게 되었고, 정신이 몽롱해질 지경이면 혈기가 범람하여 젊은 친구들과 팔씨름 한판의 객기를 부리면서 환호를 이끌어내기도 했으니 성과(?)는 있었던 셈이었다. (정주영 회장을 오마주한 것인지 흉내 낸 것인지?)


아내에게 무용담처럼 그런 이야기를 전하면, 

‘쯧쯧. 젊은 친구들이 상사라서 억지로 했겠지, 속으로는 얼마나 싫어했겠노?’ 

하는 타박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몸이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리곤 주말에는 마치 몸살 앓듯이 끙끙 앓았다. 그리곤 또 시작이었다.  

그러나 아쉬웠다.

당초 조직을 처음 맡았을 때, 목표는 전국의 모든 구성원들과 소주잔을 나누는 것을 목표 중 하나로

했었는데, 대략 2/3 정도에서 코로나가 발목을 잡은 관계로 소통행사는 스톱이 되었고, 끝내 퇴임할 때까지 코로나는 더 이상 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조직에서 목표한 바는 거의 이루었으나, 다만 이것을 마무리 못한 것이 지금에도 아쉬운 것의 유일한 것이다.     


나의 방법이 결코 옳은 것이다라고 장담은 아니 되겠지만, 내가 관리하는 조직의 특성에 비추어 본다면 이를 통한 소통이 조직을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는 생각은 양보할 생각은 없다.      


지금의 MZ세대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회식을 꺼린다고 한다. 조직의 구성원과 업무의 특성에 따라 우아하게 스파게티를 먹는다던가, 문화활동으로 조직 내 소통을 이끌어도 되지만,  

구성원들이 원한다면 소주잔을 기울이며 마음의 응어리를 뱉어내는 것도 경원시할 것만도 아닌가 한다.




퇴임 후, 내가 술자리가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한 친구를 만났더니 충격적인 말을 던진다.

그 친구도 조직문화가 강한 H그룹 출신인지라 그런 부류들을 많이 겪은 모양이다.     


‘야! 너처럼 술자리 많았던 사람들, 은퇴 후 일이 년 내 다 죽더라.’

‘엥~ 뭣’     


그 친구 당황하면서 아차 말 잘못했구나 하는 표정으로 얼버무리지만,  

건강 챙기라는 나를 위하는 생각임을 안다.     


이년이 지나면 괜찮은 걸까?  물론 지금은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싱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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