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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Jun 07. 2022

술VI – 절제(節制)하다

- '절제(節制)해야 한다'가 맞을 듯하다.

소주회사에게 묻는다.     


그대들이 국민의 건강을 핑계하여,

온갖 좋은 첨가물을 넣었느니, 아침이 맑아지니 하는 가당찮은 감언을 앞세우고,

조금씩 농도를 내려가며 철마다 아름다운 얼굴들을 앞에 세워 세상의 남자를 유혹하는,

그 새롭고 낯선 이름들의 술들은 진정 국민의 건강을 至高의 목표에 두고 만들었단 말인가?    

 

약간은 정신이 몽롱해져야, 

오히려 정신을 차려 손을 내려놓게 하는 그 원천물질의 교묘한 성질을 이용하여,

한잔이면 족할 것을 두 잔으로 만든 것은, 그대들의 잇속을 차릴 심사는 정녕 아니었더냐?      


그대들의 얄팍한 속내는, 

퇴근길 얄팍한 월급쟁이들의 기쁨을 앗아가 버렸노라!

25도에서 23도로, 다시 19도에서 심지어 16도까지 소주 본연의 맛을 버리면서까지 농도를 묽게 하여, 

더 많은 술을 백성들에게 마시게 하고, 

한잔 털어 넣을 때 식도를 타고 내려가던 짜릿한 전율과 쾌감마저도 앗아가 버렸다.    

 

다시, 

뭇사람들이 낮은 순도에 적응되어버린 지금에,  

빨간색 25도를 흔들며 과거로의 회귀와 아득한 향수를 자극한들, 

벌써 적응되어 버린 입맛은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것을 천하가 다 아는 것이니, 

이 또한 ‘Retro’ 감성을 자극하는 그대들의 장삿속이 아니더냐.     


서산에 해가 뉘였 뉘엿 기울고 동녘에는 샛별이 뜨는 여름날의 해거름 무렵,

불붙은 닭발 한 접시로 이열치열을 시험하거나,     

차가운 겨울날, 포장마차의 장막을 어깻죽지로 밀치며 들어가, 

뜨거운 국물로 속을 달래며, 25도 소주 한 병에 닭똥집 한 접시로 하루를 마감하며,

각자 몇 천 원 주머니에서 내어 깨끗하게 자리를 털면서 헤어지던 낭만도 앗아가 버렸다.     


서서히 취하는 술은,

서서히 신체를 젖게 하고,

더 오래 신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술을 먹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음은 물론이고,

앉은뱅이 술이라는 술술 넘어가는 술의 한 종류도 있다는 것임을 다 아는 터,

어찌하여 저마다의 임계값이 있는데, 들이키는 양을 늘려 그것을 맞추어야 한다는 말인가?     


국이 남으면 밥을 더 청하고,

밥이 남으면 국을 더 청하여 더 먹는다는 소리는 차라리 해학이요, 여유로움이라 할지언정,     

지금의 그대들의 소주는 한 병으로는 조금 부족하니 한 병을 더 청하고, 

그 이후에는 술이 술을 부르게 되노니,

이제야, 너를 버리겠노라 이야기할 수밖에 없노라.          


진짜 ‘꾼’들의 정의를,  

혼자서도 먹고 집에서도 몇 병을 거뜬히 해치우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척도로 한다면,  

나는 절대 ‘꾼’들 축에 끼이지 않으리라.


혼자서는 절대로 마시지 않고 집에서도 마시지 않음으로.  

당최 쓰기만 하고 술이 변질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넘어가지 않음으로.     

     

젊은 시절 주는 대로 퍼 마시던 술도 이제 절제를 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빈도는 확 줄었지만, 어쩌다 마신 술도 다음날이 하루 종일 허무하고, 

괜히 뭔가 켕기는 경험과 우울에 빠지는 마음도 싫어지는 것을 보니, 새로이 인간이 되어 가는가 보다.   

  

그러나, 씨줄 날줄로 인간관계를 엮다 보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또한 술이라,

가능한 피하려다 보면, 숙제가 밀리듯 자꾸 약속과 사람이 밀린다.

적절한 조절을 하는 수밖에.     


하지만 아직도 그리운 것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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