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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Jun 08. 2022

술VII - 에필로그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만, 

고향에 있는 오래된 민속촌 안에 '까치구멍 집'이라는 옛날 집이 있다.


민속촌을 형성하는 하나의 구성물인 동시에 주막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키 낮은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푸른 강을 바라보는 뒤편으로 장지문이 또 하나 시원하게 뚫려있고,

천정의 전등만 아니면 조선시대 시골의 어느 초옥에 와 있는 분위기를 완벽히 갖추었다.   

  

작고 아담한 공간 안.

키 낮은 천장을 머리에 이고, 옛날식의 구들장 위에 앉아 강물을 내려다보면 

옛 선비의 풍류가 절로 느껴진다.     


‘주모! 여기 막걸리 한통에 호박전 하나 주소.!’     


호리병에 담긴 술 한 병과.

텃밭에서 갓 따왔을 호박에 매운 고추가 듬성듬성 박힌 푸짐한 호박전으로,

개다리소반이 좁아진 술상을 앞에 놓고,     


벗들 간에 ‘김公’, ‘이公’하면서 어설픈 풍류를 흉내 내며,

다가올 무거운 삶의 무게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고,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보잘것없는 지식의 편린들을 끼워 맞추며,

진화냐 창조냐 하는 類의 무거운 해답을 결론 내고자 했던 목마른 논쟁을,

한 잔의 술로 해소하던 그 젊은 날의 기억을 그린다.     

     

귀거래사 읊으며 고향의 강으로 돌아갈 제.     

얼굴엔 낯선 고랑이 패이고,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 있을 

내 젊은 벗들을 청하여,     


이보시게! 저보시게,

이 사람아! 저 사람아.

마시게! 드시게,

권커니 잣커니,


지난 세월과 남은 시간을 주고받으며,

부끄럽지 않았던 우리의 삶들을 노래하리라.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꺾어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 메고 가나 

 오색실 화려한 휘장에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풀, 속새풀,떡갈나무,백양속에 가기만하면

 누런해, 흰달, 가는비, 굵은눈, 회오리바람불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제야 뉘우친들 어이리   

                           - 장진주사/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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