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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Jun 09. 2022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을 敬畏하며.

얼마 전 우리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께서 타계하시었다.


젊은 시절,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고 그분의 해박함과 통찰력에 감탄한 것과, 

더러의 인터넷을 통한 강연으로 그분을 접한 적은 있지만, 깊이 있게 그분을 추종하지는 못하였다.     

 

몇 년전 어느 일간지에서 선생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여든이 넘었음에도, 서재에 아홉 대의 컴퓨터를 연결하여 마치 워크스테이션처럼 운영하며 지식의 습득과 저술 활동을 하고 계셨음을, 

경외심과 함께 한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방대한 지식을 축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이것은,

베르나르의 소설 ’‘ 에서 보여준, 인간 두뇌의 無限같은,

최민식 배우의 영화 ’루시‘에서의 100% 가동되는 두뇌의 능력이 이런 것이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최근에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두 장면을 접하고, 

소나무 가지를 붙잡고 선 채로 입적하였다는 ’혜월 선사‘같은 고승 대덕의 경이로운 정신세계도 가지셨던,  

인간을 초월한 ’거대 지성의 집합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장면은,

생의 마감이 다가왔음을 아시고는 작년 7월경에, ’남은 우리들‘을 위하여 마지막 인사를 주셨는데, 

나는 그 영상을 보고 肉親이 아님에도 가슴에 뜨거운 무엇이 차오르고 먹먹해짐을 어찌할 수 없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한 세상을 살아왔고 한 시대를 지내온 사람으로서,

     마지막 여러분들과의 헤어지는 인사말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중략>........ 

     헤어지는 인사말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 있으세요여러분 잘 있어요.    


맑은 얼굴과 맑은 음성으로, 하얀 손을 흔들며. 단아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그 모습은, 

평생을 정진하여 득도한 선승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고,

인간이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던 나는,

일생을 공부와 사유를 통해, 거대 지성을 이룬다면 가능한 것이겠구나 하였다.     


       

또 하나의 장면은,

선생께서 타계하신 후, 모 일간지에 실린 선생의 자제분이 전한 臨終에 대한 기사였다.


죽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봐야겠다는 표정이었다. 허공을 아주 또렷하게 30분 정도 응시하셨다. 

 마치 아주 재미있는 걸 지켜보시는듯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황홀한 얼굴이었다. <중략>

 마치 죽음과 대결을 한번 해보시는 듯하다가 편안히 숨을 거두셨다 ‘     


죽음이 어떻게 오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를, 절체절명의 의식이 미령(靡寧)한 신체를 기어이 이겨내고, 

관찰하고 대결하시는 듯했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멋진 일이지 않은가?    

      


자신의 죽음을 관찰하고 대결한다는 것.

인간의 정신과 두뇌는 호기심과 지식의 습득과 사유와 끊임없는 훈련과 가동(稼動)에 의해 

결코 쇠하지 않고 더욱더 강해지고 고도화되는 것이 아닐까?     


선생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 어린 눈길, 지적공부와 지식 습득을 게을리 말며, 사유하고 또 사유하여, 

이로써 만약 선생의 정신세계와 지성의 백만분의 일 정도나마 좇아가는 것이 허락된다면,

언젠가에 될 마지막 대결이, 정갈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온전한 나의 정신과 함께 하기를 소망해본다.   


  

※ 매년 하는 건강검진 시 수면내시경 할 때마다, 절대로 정신을 놓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먹어보는데,

      -고통을 외면하려 수면마취를 자원해놓고, 깨어있어야지 하는 이 심사는 뭐란 말인가?     

    하지만, 내 몸에 약이 들어오고 깨어 있어야지 하고 나를 붙잡는 순간, 나는 없어졌음을 알게 된다. 

    죽음이란 이런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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