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틀무렵 Apr 29. 2022

삶에 대한 斷想

매일 아침 내가 출근하는 지하철역에서 한 분을 만납니다. 

지하철역 우측, 일상에서 늘 바쁜 출근길 사람들이 올라오는 계단 옆에, 한분이 늘 앉아 계십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그 자리, 그 표정으로 앉아 계십니다.

어느 날의 공휴일 출근길에서도, 그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외근 후 복귀할 때 보니, 거의 정오 시간까지 그 모습으로, 별로 팔리지 않은 떡을 안고 앉아 

계셨습니다.      


그분은 연세는 일흔은 넘기신 것 같고, 키는 일 미터 오십쯤에 사십 킬로는 되려나 싶은 체구가 

자그마하신 할머니입니다. 늘 무표정하고, 세상의 온갖 시름을 혼자 가지신 듯 한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長久한 세월을 至難하게 살아오신 분으로 생각됩니다.     


그 할머니 앞에는, 흔히 우리가 ‘다라이’로 부르는 커다란 양은그릇에 떡이 늘 한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하얀 떡에 초록색 쑥떡에, 공기 떡, 절편,.. 모양도 가지가지로 늘 한가득 수북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한 번도 그 바쁜 출근길의 사람들이 떡을 사는 것을 보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그분께 일별(一瞥)조차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출근길에 그 할머니를 보면서 늘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저 자그만 체구와 노약한 몸으로, 족히 삼사십 킬로그램이나 됨직한 그 무거운

대야를 가지고 그 계단을 올라오실까?

어느 한 사람도 사가는 사람이 없는데 팔리지 않은 저 많은 떡을 어떻게 처리하실까?     


늘 이런 궁금증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연민을 마음을 보내면서 -그분의 삶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왠지 모르게 무거운 가슴으로 출근을 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 팀원 한분과 밖에서 조용히 할 이야기가 있어, 지하철역 부근의 어느 호프집에 앉아 있었습니다. 늘 나오는 회사 이야기와 더불어 나 혼자 할 말을 하면서 맥주를 먹었습니다.

약간 취기가 오를 때쯤이었습니다. 대략 열 시 반 정도는 되었나 싶은 시간이었습니다.     


‘떡 하나 사요’ 


가냘픈 목소리와 함께 그 할머니가 갑자기 내게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반가웠습니다. 

얼핏 보니 그 무거운 대야에는 떡 봉지가 너 댓 개 정도 있었습니다.

떡이 거의 다 팔려 바닥이 보이는 떡 대야를 보고는 알지 못할 안도감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왜 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퍼뜩 지갑에서 이천 원을 꺼내어 드리고 한 봉지의 떡을 받아 들었습니다.

거의 얼떨결에 받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곤 그동안의 나의 궁금증을 쏟아 냈습니다.

아침에 어떻게 지하철역까지 오시냐?  댁은 어디신지? 안 팔린 떡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등등 그동안의 나의 궁금증은 나를 수다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댁이 어느 초등학교 부근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략 육칠 킬로미터는 족히 되는 거리였습니다. 거기서 매일 아침 그 무거운 대야를 이고 지하철역까지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팔리지 않은 떡들은 다시이고, 온 동네와, 거리를 다니면서 판다고 했습니다.

몇 마디 대화를 남기고 할머니는 또 고단한 몸을 이끌고 가게를 나갔습니다. 

    

우리는 또 우리의 대화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화 내내 설핏설핏 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자꾸 나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궁금증이 풀린 시원한 마음보다, 참으로 무거운 마음과 할머니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또한, 몇 봉지 남지 않은 떡들을 보고 안도감과 찰나의 행복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노고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그 떡을 한 개도 먹지 않고 가게를 나왔다는 것이 

귀갓길 취기 속에서도 내내 내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그 할머니는 오늘도 고단한 몸을 이끌고 거리를 다니시고 계실 겁니다.

아니면, ‘운수 좋은 날’이어서 벌써 다 팔고, 고단한 몸을 눕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내일 새벽,  또 예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숨 가쁜 도시 사람들의 일상의 분주한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앉아 계실 겁니다. 


아침 출근길에 또 한 분을 만납니다.

지하철역 회사로 내려오는 인도 편에서, 자동차 뒷 트렁크에 김밥을 파는 아저씨입니다.

모자를 눌러쓰고, 출근길 사람들을 오히려 등진 채, 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출근길에 나도 두어 번 그분의 수고로움을 천 원 한 장을 건네고 전해받은 적이 있습니다.     


혼자 생각합니다. 어떤 이유로 갑자기 직장이나, 생업을 잃고, 아내가 새벽같이 일어나 만들어준 김밥에, 

그분의 수고로움을 더해서 파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아저씨를 만나면 왠지 들판에 홀로 있는 듯한, 

허허로움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천 원 한 장 건네며 김밥을 사는 손이 부끄러워질 때 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아저씨는 보이지 않습니다.

역 앞에 새로 생긴, 김밥전문점 때문에, 어디 다른 목 좋은 자리로 터전을 옮긴 것인지,

아니면 혼자의 추측대로 잃었던, 직장이나, 생업을 다시 찾았는지 모릅니다.

다만, 짧고 좁은 시야로 살아온 내 인생 경험의 판단으로 후자가 맞기를 빌어봅니다.         

 

일상에서 내가 본 두 분의 생활을 보면서, 내가 가진 것과 현재를 생각합니다.

두 분의 생활이 피상적으로 내가 느끼는 것과 달리, 물질적으로 나보다 더 풍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속된 말로 ‘집에 금송아지 두 마리가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쓸데없는 연민이나,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요즘 힘들다, 어렵다 다 말합니다.

맞습니다. 

나도 그렇게 늘 구시렁거리는 부류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침에 만나는 두 생활을 보며 늘 자위를 하고자 합니다.     


아주 풍족하지는 않지만 내 생활을 영위하게 하고,  날마다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

같이 부대끼며 대화하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같이 아파하는 동료들이 있고, 소주잔 앞에 놓고 왁자하게 

가슴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시간이 있고, 때가 되면 또 삶이 빈곤하지 않게 적절히 나오는 보상과,

일주일 이틀씩이나 나에게 안온한 휴식을 주는 터전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소중하고 소중한 축복이자, 

늘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단단히 조여 만들게 합니다.(2006.07.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