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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Jul 08. 2022

나도 모르게 그분들을 ‘디스‘ 해버렸습니다.

’ 메라비언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화자가 청중에게 주는 영향에는 요소가 있는데, 언어가 7%, 청각정보가 38%이고, 나머지 55%가 시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를 7:38:55의 법칙이라고 하고, 3V 법칙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Verbal-언어정보, Vocal-청각정보, Visual-시각정보) 

우리 속담에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고, 시각, 즉 보이는, 보는 것에 의해 인식과 평가가 많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걷기 운동은 동네 주변 여러 코스를 나름 개발하여 마음이 움직일 때마다 하곤 하는데, 얼마 전 걷기 운동을 하다가 아무도 모르는 실수를 해버렸다. 뒷골목이지만 차량통행이 꽤 많고, 차량이 일방통행인 사거리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 사거리 한 모퉁이에는 자동차 세차를 겸한 정비회사가 있어, 세차장을 출입하려는 차량과 더구나 퇴근 무렵의 차량 증가로 인해, 차량이 엉킨 상태가 되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서 있던 자동차 창문이 열리더니 어떤 아가씨가 내게 언짢은 소리로 소리를 내 지른다.   

  

‘아저씨. 빨리 정리하지 않고 뭣해요!’

‘아! 나 여기 세차장 직원 아닌데요.’

‘어머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했으면 아무 일 없이 좋았을 것이었는데, 젊은 사람에게 언짢은 소리를 들은 때문인지 순간 화가 살짝 치밀어 올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마디 툭 던지고 말았다. ‘사람을 어찌 알고...’     


그리고는 무심히 내갈 길을 가는데, 조금 전 상황이 머리에 되뇌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람을 어찌 알고’를 내뱉은 나의 말에, 스스로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는 분명히 세차장에 일하시는 연세 많고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계시던 몇 분을 그전에도 오가며 더러 봤는데, 내가 그분들과 같은 취급(?)을 당한 것에 대한 순간적인 반발과 불쾌로 그런 모진 말을 갑자기 뱉어 버린 것이었다. 행여 그분들이 옆에 없었기에 망정이지 내 말을 들었다면, 매우 불쾌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분들을 디스‘ 해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고 가서 죄송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마음속에 교만이 있는가 하는 반성과 함께, 한편 내가 다른 이에게 보이는 모습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겉으로 보이 것 만으로 사람을 평하고 재단하지 말자는 것은 누구나 하는 말이며, 진실된 말이지만, 메라비언의 법칙과 같이 사람의 심리와 인식은, 절대 그렇게 쉬이 작동되지 않는 모양이다. 요즘도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분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죄송합니다라고 하지만, 빠른 망각이 되지 않고 이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오래갈 기억임에는 틀림이 없다. 죄송합니다.      


軍 장성으로 퇴역한 어느 퇴역 장군은, 퇴역 후 처음에는 체면과 동네 사람들을 의식해서 동네빵집에 갈 때도 정장에 넥타이를 하고 나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고, 더구나 작금은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가 얼굴을 가려주니, 더욱이 체면이나 이웃을 의식할 일이 없다. 게다가 회사 다닐 때도 자율복장이라는 회사 방침-자율이라기보다 오히려 리더에게는 청바지 등 입기를 강권했던-에 의해 거의 청바지 한 벌에 티셔츠 몇 개로 여름을 지낸 이력과 태생이 멋 부리기보다 털털한 성격이라 늘 운동하기 적당한 면바지, 등산복 등으로 치장하고 공원이나 동네를 쏘다녔기에, 아마도 그 아가씨가 내게 그렇게 이야기 한 모양일 것이다.     


나의 옷에 대한 차림과 기호는 늘 아내와의 다툼 거리 중 가장 첫째로 꼽을 수 있는 싸움거리이다. 나의 입성에 대해 아내로서는 사랑일지 몰라도, 나는 이를 쓸데없는 참견과 시비로 느껴지기에 자주 다투고,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가면 그 끝이 좋을 때가 거의 없다. 늘 저렴한 쪽으로만 눈을 돌리는 나와, 남편을 그럴듯하게 보이고픈 아내의 마음이 항상 충돌하기에, 드디어 작년에 ’ 이제 옷은 절대로 같이 사러 가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약속은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소소한 이번 사건을 돌이켜보면, 나도 생각을 조금 바꾸기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운동하러 가면 보이는 건장하고 싱그러운 젊은이들이 유명 브랜드의 옷을 Fit이 딱 맞게 입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도 한때의 젊은 시절이 있었지 하는 생각만이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고급스럽게 입어야 한다는 아내의 지론에 조금씩 수긍되는 것도, 메라비언 법칙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고 이제야 진짜 철이 드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하얀 줄 세 개가 보기 좋은 ‘아○○○’나, 무심한 듯 그어놓은 한 줄 곡선이 멋진 ‘나○○‘ 운동복 한 벌을 준비해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만, 나는 오늘도 털털하게 입고 운동하러 나갔다. 오늘은 어젯밤 내린 시원한 비로 인해 날씨가 제법 선선하다. 운동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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