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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Jul 05. 2022

매미를 그리며-우화(羽化)

무더운 날씨에, 강아지 산책은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루 종일 심심하다고 이방 저방을 기웃거리며 뒹굴다가 보채다가 하는 녀석을 보면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일과 중 하나이다. 오늘도 어둠이 보일락 말락 하는 시간을 잡아 녀석을 앞세워 놀이터를 갔더니, 바닥에 조그만 생명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풍뎅이인가? 몸을 숙여 자세히 보니, 우화(羽化)를 앞둔 매미였다.

     

나의 경험으로는 매미가 울면 장마가 끝났다는 것이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확실하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매미들의 어떤 능력 때문인지 매미는 아주 정확히 장마가 끝났을 때 우화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장마가 끝나리라는 소식도 없고, 조만간 또 비가 온다는데, 이 녀석은 어이하여 벌써 우화를 준비한다는 말인가? 더구나 방향을 잃고 아직도 한낮의 뜨거운 태양열이 떠나지 않은 따끈따끈한 바닥을 기어 놀이터 중앙으로만 가고 있는지. 분명 시기도 잘 못 알고, 방향도 잃은 놈일 것이다.    

  

안쓰러운 마음에, 그 녀석을 집어다가 박태기나무에 붙여주었더니, 신나게 기어 올라간다. 매미는 땅속에서 올라와, 나무를 기어올라 높은 곳에서 우화를 하는데, 내 추측이 맞은 것이다. 신나게 나무를 기어 올라가니 말이다.       


이제, 이 녀석은 나무 꼭대기에서 오늘 한밤을 지새우며, 제 등짝을 가르고, 온 힘을 짜내어 새로운 몸체를 만들 것이다. 때로는 숨죽이고, 때로는 헐떡이며, 때로는 부르르 떨기도 하면서, 마침내 내일 새벽쯤에는 어린 시절의 껍질을 벗어내고, 깊이 숨겨놓았던 투명한 날개를 펼쳐 동틀 녘의 아침햇살에 말리고 있을 것이다.  녀석이 벗어놓은 첫 껍질은 바람에 하늘거리며.   

    

그리곤, 오래전 주말부부 시절, 새벽 기차를 타려고 나섰다가 자동차 바퀴에 붙어있던, 우화를 막 끝낸 매미를 보고 끄적거린 것이 생각나서 다시 끄집어내어 보았다.


(2006. 7. 27)

새벽에 올라오는 월요일이었다.

아침에 깔끔하게 일어나던 습관도. 

얼마 전부터 다시 잇기 시작한 그놈의 담배 때문에 몸은 천근만근이고.    

 

아파트 마당에서 자동차 키를 꽂는 순간,

非夢似夢에도 보이는 것이 있었다.

자동차의 뒷바퀴 밑에 붙어있는 이상한 물체.     


누런 덩어리 두 개가 아래위로 나란히 붙어있었다.

졸린 눈을 부비며 자세히 보니,

아하~

막 우화(羽化)를 마친 매미 한 마리.

밤새 궂은 날씨에,

간신히 세상을 향한 투쟁을 마치고,

승리의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매미 한 마리였다.     


본체가 빠져나간 무생물의 투명한 껍질은 하릴없이 날카로운 발톱의 힘으로 

타이어 바퀴에 매달려 있었고,

껍질을 탈피한 몸체는 막 세상의 어리둥절함을 터득하는,

그 생물의 본연의 거무튀튀한 색깔을 갖추기 전의 누런색과 연 초록색의 빛을 발하며,

채 여물지 않은 연약한 몸체로, 

세상의 새벽을 홀로 느끼며 몸체를 단련하고 있었다.          


매미.

내가 아는 짧은 지식으로는,

칠 년 동안 땅 속에서 굼벵이 상태로 지내다가,

칠 년 만에 땅 위로 기어 나와, 羽化를 거친 후 일주일을 산다고 들었다.     


와신상담의 시간도 아니고, 

오로지 일주일의 짧은 세상을 향한 몸짓을 위해, 

그런 오랜 인고의 시간을 보낸단 말인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상을 향한 울부짖음을 마음껏 토해내며,

생명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하겠지.      

     

세상을 향한  단 한 번의 날개 짓을 하기도 전에,

저 흉측한 물건의 주인에 의해, 

바퀴 한번 구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매미여.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시절에 철없이 기어 나와,

자리를 잘 못 잡은 저 매미여.


학창 시절 장마가 끝 날 때쯤의 운동장 한편 능수버들 아래 뻥뻥 뚫린 구멍과 

능수버들에 무수하게 붙은 껍질을 생각하면, 

이놈은 분명 자리를 잘 못 잡은 것이었다      


가만히 매미를 떼어내었다.

연약하지만, 단단함을 느껴지고,

새 생명의 힘찬 기운이 내 손을 통해 느껴졌다.     


아파트 마당에서 한껏 盛夏의 여름을 즐기고 있는 회나무 뒤편에 붙였다,

막 기어 올라간다.

안도감을 느끼며 내 갈 길을 갔다.     


두 시간여의 여행으로 회사에 들어오니, 아내로부터 문자가 왔다.

나 태워주고 와서 다시 와서 보니 잘 붙어있더라고.

디카로도 찍어 놨다고.            



이 지긋지긋한 장마는 언제나 그칠까?

지금도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보며,

한 줄기 푸른 담배연기를 허공에 뿜어내며,

낭만을 즐기는 찰나의 마음의 여유도 가지고 싶은 시간들.         

 

이 비 그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런 여름이겠지.     


매미소리 자지러지고, 

동네 어귀, 

어느 들마루에는,

누런 삼베적삼 입고 부채 살 펼쳐 바람을 일으키는 어르신들이, 

나른한 오수를 즐기는 여름이리라.     


보름 남짓의 시간이 흐르고, 

그러한 매미소리가 마지막 숨 가쁜 호흡을 토해 낼 때쯤이면,

또다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立秋이리라.     


그때까지 우리는 생명이 요동치는 뜨거운 여름을 생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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