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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Jul 14. 2022

일 년 반 백수의 소감(小感)-2

백수의 1차 의무는, 가사(家事)를 분담하는 것이다. 이는 아내를 위해서라기보다 나의 평온을 위함이다.


가정주부들의 고충을 알게 되다.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찾아 먹는다는 ’삼식(三食)이’는 밥충이의 이미지에다가 천덕꾸러기 백수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요즘이다. 사람들이 3식을 하게 된 것은 생리현상과 더불어 사회의 약속인데 갑자기 삼식이가 천덕꾸러기가 되다니 삼식이는 억울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래전에는 점심이라는 것이 없었고, 두 끼만 먹다가 조선 태종代에 이르러서야 점심을 먹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마음(心)에 점(點) 하나를 찍듯이 간단히 먹었다고 한다.      


나는 백수 첫날부터 2식만 하겠다고 선언 후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다. 이건 매우 쉬운 일이다. 3식을 하려고 해도 늦은 아침을 먹으니 오후 두어 시까지는 밥 생각이 나지 않고, 더구나 에너지 소모가 적으니 배도 쉬이 고파지지 않는데, 이는 두뇌를 쓸 일이 아무래도 줄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 무게는 몸무게의 2% 정도지만 전신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의 20% 이상을 소비한다고 한다. 또한 점심을 건너뛰고 다소 이른 저녁을 먹게 되니, 2식이 주는 넉넉한 저녁 시간은 아주 유용하다.      


이렇게 2식을 함에도 식사 때만 되면 아내는 늘 ‘해 먹을 게 없네’하는 푸념을 입에 달고 있는데, 처음에는 35년 차 주부의 귀찮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대학 시절의 자취를 시작으로 주말부부 등, 성인 이후의 17년, 약 40%의 기간을 내 손으로 밥을 해결한 경험으로, 설거지, 밥 짓기, 간단한 찌개 정도를 자주 하는데, 아내는 숟가락 놓자마자 뒤처리는 내게 맡기고 커피 한잔 타서 TV 앞에 앉는 것을 보면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다.       


지금은 ‘장보기’까지 내가 분담하는 영역이 확장되어, 이제 가사의 상당 부분이 나의 역할로 굳어져 가고 있다. 장보기까지 확장된 것은, 외출할 때마다 ‘오는 길에 뭐뭐 좀 사 오소‘하고 아내가 차츰 나를 길들인 결과다. 마트에 가봐도 눈에 띄는 것은 두부, 달걀 정도이고, 그 외 봄철 한때의 채소류 외 특별한 뭐는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아직 가사의 경험이 낮은 탓이겠지만, 때마다 듣는 아내의 푸념에 격하게 공감이 되는 요즘이다.     


오늘도 운동하러 나가는 나의 뒤통수에 아내의 예의 멘트가 꽂힌다. ’오는 길에 마트 좀 들렀다가 와요~’

오늘은 또 무얼 해 먹지? 하는 주부들의 눈빛이 교차하는 마트 안에서, 나도 ’햐~!‘ 한숨을 길게 쉬고 있을 것이다. 아내의 말은 늘 옳다.       




생활 쓰레기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쓰레기 분리수거는 당연히 나의 몫인데,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가능한 비닐류, 종이류 등, 어느 하나 만만치 않다. 특히 비닐류가 그렇게 많은 지 이틀만 모으면 10리터 종량제 봉투를 꽉꽉 누를 정도로 많아진다.      


비닐이나 스티로폼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우려를 자주 이야기하지만, 점점 늘어나기만 한다. 코로나로 인한 택배의 증가, 비닐 포장재의 편리와 기능을 가진 대체 가능한 소재는 현재로는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대체물질이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석기-청동기-철기시대를 이어 지금 시대를 혹자는 ‘석유 시대’라고 하고, 최근에는 ‘반도체 시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석유 시대가 맞는다고 생각을 하는데, 주위를 돌아봐도 석유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할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글자를 치고 있는 자판도, 노트북 케이스도, 아닌 게 없으니 말이다.      


아주 오래전 소년기에, 석유는 앞으로 30년 후에 고갈된다고 했는데, 그 시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끝없이 생산되는 것을 보면, 계속 유전이 발굴되는 것보다는, 지구 자체가 하나의 유기체라는 ‘가이아 이론‘대로 스스로 계속 석유를 생성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석유가 고생대, 중생대에 대량으로 묻힌 생물들의 잔해라는 것에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유기체인 지구가 스스로 석유를 무한 생성한다면, 석유화학제품은 앞으로도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개인이 아무리 줄이고자 해 봐야 소용이 없는 일, 인류 전체의 시스템과 생활방식이 바뀌지 않은 한, 우려와 캠페인만 난무하면서 갈 데까지 갈 것이다.     


무더운 날씨에 아이스케이크 하나를 깐다. 또 하나의 비닐이 쓰레기봉투에 던져진다. 

갑자기 백 년 후까지 살고 싶다. 

그때 인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공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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