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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Jul 16. 2022

일 년 반 백수의 소감(小感)-3

길게 남은 은퇴 후의 시간은 또 하나의 숙제이다. 특히 남자에게는.

  

’유발 하라리‘는, 인류는 앞으로 노화된 장기를 바꾸어 가며 150세까지 살 것이라며, 다만 거기에 따른 경제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 했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지금의 우리도 '재수 없으면' 120살까지 산다는 말도 한다.




은퇴한 남자 들는 다 어디에 있을까?

은퇴 후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은퇴자와 주민들을 위해 재취업이나 평생교육, 복지의 목적으로 운영하는 기관들이 엄청 많다는 것이다. 무슨 재단, 복지센터 등등, 내가 사는 區에만 열 개가 넘고, 게다가 서울시, 구청, 주민센터도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오히려 헷갈릴 지경이다.    

 

서울시에서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주식, 부동산, 상속 등 경제교육을 한다기에 내가 가장 취약한 분야이기도 하고, 혹시 돈 버는 일에 도움이 될까(?)하여 신청하였다. 총 네 번의 강의 중, 첫날 참석했을 때, 약 오십 명의 수강생 중 남자는 달랑 세 명이었다. 사십 대부터 칠십 대까지의 아줌마, 할머니(?)들이었다. 조금 계면쩍은 생각에 제일 뒷자리를 차지하고 듣긴 했다만,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들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경제에 무관심했던 나를 보면 이게 맞는 현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한 번은, 아내가 주민센터에서 하는 ’건강한 척추관리 운동‘이라는 강의에 같이 가자고 했다. 선착순 모집이라, 내가 미리 가서 줄을 섰는데, 가보니 이미 줄지어 서 있는 모두가 여성들이었다. 뱀 똬리처럼 구불구불한 줄 속에, 의도치 않은 청일점이 된 나는 아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차례가 되어 신청하기는 했는데, 아내만 신청해주고 나는 신청서 제출 순간에 취소해 달라고 했다. 수 십 명 여자들 틈에서 요가 비슷한 운동을 함께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다녀온 후, ‘당신 신청 안 하길 잘했더라. 전부 여자들이더라.’ 나의 판단이 옳았다. 이러니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것일까?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이유는, 여자에게는 ‘마누라’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어느 강사의 썰렁 개그)


은퇴한 남자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디에도 끼일 수 없는 어정쩡한 나이

지난 오월에 대구를 내려가서 십 년 만에 초등시절 은사님을 뵈었는데, 여든의 연세에도 복지회관에서 중국어, 일본어 강사로 활동하고 계셨다. 그 말씀을 듣고, 일본어 공부를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 들어, 복지회관을 탐색해보니, 다행히 한 곳에서 내가 찾던 강좌가 있었다. 인원수가 다 차서 자리가 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약 이십여 일 지난 후 전화가 왔다.     


‘○○○ 어르신 이십니까?’

‘아.. 예.. 음.... 어르신은 아니고요, 제가 ○○○입니다.’     


어르신’이라니, 이 나이에 어르신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결코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고 내 이름이 아닌 남의 이름이 불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오라는 날짜에 설레는 마음으로 갔는데, 강의실을 살짝 들여다보니 칠십 대 이상으로 보이는, 고령자분들만 계셨다. 진짜 어르신들이었다. 그것도 여자들이 더 많은. 저 어르신들 틈에서 내가? 강의실 복도를 몇 번을 서성이다가 결국 되돌아 나오며, 수강취소를 하겠다고 전화를 했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허탈했다.


지금의 오육십 대를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낀’ 세대라고들 하던데, ‘낀’ 세대라기보다 어디에도 ‘끼이기’ 어려운 어정쩡한 세대인가 보다.  


혼자 하는 어학 공부가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차라리 그때 반의 막내가 되어,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받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문득문득 들지만, 앞으로 십 년까지는 이런 데는 기웃거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더 강하다.


-덧붙인다면, 오육십 대를 ‘낀 세대’라는 이유가, 부모님의 장수로 봉양 기간이 늘어난다는 것과, 자식들의 자립이 과거보다 어려워 그렇게 부른다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어렸을 때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 세대와 달리 배는 곯지 않았고, 고도성장의 혜택을 온전히 받은 세대이다. 부모님의 장수는 축복이니 더 말할 것도 아니며, 젊은 세대는 가재붕어개구리가 용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고축소된 기회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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