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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Jul 18. 2022

일 년 반 백수의 소감(小感)-4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데, 보이는 것이 자꾸 많아진다.     


낮술 먹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지?

낮술이라고는 모르던 내가, 작년 삼월경 처음으로 지인들과 낮술을 하게 되었다. 야외활동 후 뒤풀이 자리였다. 손님이 없는 식당을 일행만 차지하고 앉자 약간 설레는 기분이 들었는데, 몇 순배 술이 돌자 기분은 점점 UP 되고, 세상이 내 것처럼 느껴졌다. 뭐지? 이 편안함은.     


야간에 온갖 시름과 회사 일이 범벅이 된 전투와 같은 술자리가 아닌, 갑자기 찾아온 걱정할 것 없는 환경과 내일의 음주 후유증의 부담이 없음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식당을 지나칠 때면, 식당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낮술 먹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 많이 먹기로는 세계 1, 2위를 다툰다고 하더니, 젊은이, 늙은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술병이 없는 테이블을 보기가 어려웠다.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동이족의 핏줄이 이어져 오고 있고, 행복지수가 낮은 치열한 경쟁사회와 자고로 대화에는 술 한잔이 빠지면 대화가 밋밋하다는 관습 때문으로 생각된다.      


작년에 고향에 갔더니, 어느 식당에 커다란 간판을 세워놓았다. ‘낮술 대환영

코로나로 자영업자들이 힘들어서 이런 아이디어까지는 애교로 봐줄 만하나, 분명 우리는 과도한 술 먹는 사회이고, 더구나 낮술을 이렇게 많이 찾는 것은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맛있다!       



잔소리가 많아지는 이유 – 둔감력(鈍感力)이 필요하다.

오래전 IMF 때 희망퇴직을 한 팀원이, 그다음 해 봄 어느 날, 지나가다가 들렀다며 차 한잔을 청했다. 대화 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의 한마디는 ‘회사를 나가니 꽃이 보입디다.’라는 것이다.  


올해 봄, 강아지와의 산책마다, 유달리 그 친구가 생각이 나는 것은 나도 드디어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꽃이 보이고, 어디쯤의 어느 꽃이 지금쯤 피었거니 하며 강아지를 그쪽으로 이끌곤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같은 장소의 같은 종류의 꽃이, 하얀색 꽃이 늦게 핀다는 사실까지 눈에 들어왔는데, 영산홍이 그렇고 라일락도 그러했다. 아직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으나 흰색은 태양 빛을 반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세상의 온갖 해답이 있는 인터넷 포탈에도 이것에 대해서는 없는 걸 보니, 쓸데없는 호기심이 분명한데, 기회가 되면 식물학자에게 물어보려고 한다.     


강아지와 자주 가는 산책길 중에 오래된 유치원이 딸린 오래된 수녀원이 있다. 언덕에 위치 한 유치원 옆에는,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여러 대의 스쿨버스가 늘 줄지어 있다. 무심코 지나치다가 어느 날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비탈에 주차한 차들이 바퀴에 고임목을 전혀 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갑자기 브레이크가 풀려 사고가 발생한다는 뉴스도 가끔 들려오는데 그 차들은 담벼락에 고임목이 있음에도 어느 차량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일부 기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는지, 핸들을 담벼락 쪽으로 꺾어 놓았지만 아니 그런 차들이 더 많다. 그것을 볼 때마다, 유치원 측에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하지만 얼마 전 어느 문화유적지 안내 표지판에 오류가 있다고 구청에 민원(?)을 내었는데, 딸내미가 ‘아빠. 그러다가 진상되는 것 아니야.’ 했던 소리가 마음에 남아 있어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커다란 말뚝이 박힌 물이 가득한 웅덩이가 있는데, 말뚝을 뽑아내면 뽑힌 구멍으로 물이 금세 채워지듯이,

생활의 6~70퍼센트를 차지하던 회사라는 말뚝이 갑자기 뽑히니, 그 빈자리를 이런 소소한 것이 채워지는 모양이다. 마음과 생각은 잠시라도 빈자리로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짜 ‘멍’ 때릴 수 있는가? 회사를 나가니 꽃이 보이더라는 그 팀원도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져서가 아니라, 그 빈자리가 소소한 것들로 채워진 것이다.      


세세한 관찰과 생각은 쓸데없는 관여나 간여가 되고 이것을 밖으로 드러내면, 소년기에 그렇게 듣기 싫었던 어른들의 참견과 잔소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잔소리만 늘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둔감력’이 아닐까? 너무 민감해지지 말고, 웬만한 것은 지나쳐 보고.     


그러나 세상사에 無心하면 노화가 빨리 진행된다고 한다. 나도 매사에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이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무언가 알게 된다는 것은 즐겁지 아니한가?

지나친 관심과 신경은 쓰지 말고 쿨하고 둔감한 마음은 가지되, 관찰과 호기심을 놓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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