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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Jul 21. 2022

뒤늦게 하는 고백

그 친구는 6학년 때 우리 반이었다. 

나와 반장, 부반장을 나누어 맡으며 은근히 라이벌 의식도 있었지만, 꽤 친하게 지낸 친구였다.     


친구는 공부뿐 아니라, 성격도 좋았고, 특히 노래나 요즘 말로 개인기가 뛰어났는데, 소풍 때 오락 시간이 되면 거의 그 친구의 독무대였다. 턱에다 손을 괴어서 아래위로 흔들면서 ‘과과과곽...’ 기관총을 쏘는 흉내는 '남보원' 뺨 칠 정도였고, ‘바람이 분다바람이 불어...’로 시작하는 '군밤타령'은 초등학생답지 않게 능청스럽게도 잘도 불러, 오락 시간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곤 했다. 그 노래가 우리 반에 얼마나 깊은 기억을 남겼는지, 얼마 전 당시 선생님을 모시고 식사를 했을 때 선생님께서도 그 군밤타령을 기억하고 계셨을 정도였다.  



육 학년도 끝 나가는 가을 무렵.

이 범생이(?)도 어느 날 숙제를 땡땡이치고 학교엘 갔다.

졸업이 다가오는 6학년 2학기이니, 선생님도 숙제 검사하시는 것을 자주 건너뛰었고, 

우리들의 마음도 제대 말년의 선임 병장이나 된 듯이 좀 군기가 빠져서, 선생님의 틈을 본 거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불같은 선생님께서 숙제 검사를 꼼꼼히 하셨다.

두근거리는 맘으로 걸리지 않고 넘어가길 바랐지만, 그날은 꼼꼼한 검사를 받았다.

결국 스무 명쯤 되는 아이들이 교단으로 불리어 나갔고 벌이 내려졌다.

운동장 열 바퀴, 그리고 교실 청소.     


열심히 벌을 받았다. 열심히 운동장을 돌았다.

‘맞아! OO이도 숙제 안 했는데, 오늘 안 걸렸다. 나만 재수 없게 걸렸네’ 

숙제 검사 전에 OO이도 숙제하지 않은 걸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운동장을 달리면서 보니,

OO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내 눈에만 안 보였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가을날의 운동장을 길게 돌아 교실로 들어왔다.

가을 햇살이 따사한 창가에 기대어 가쁜 숨들을 학학 몰아쉬었다.

나는 분했다. 나만 걸리고 OO이가 걸리지 않은 것이.     


옆에 있던 누군가에게 기어이 내가 삭히지 못한 속내를 터트리고 말았다.

‘OO이도 숙제 안 했다. 너 아냐? 근데 안 걸렸다.”

마치 OO이가 무슨 꼼수를 써서 빠져나간 듯이.     


그런데 나의 투덜거리는 소리에 주변은 별 반응이 없었고, 이상하게 옆이 서늘하였다. 

고개를 돌렸다. 아!      


OO이도 바로 내 옆에서 숨을 몰아쉬며, 가을 햇살을 맞고 있었다. 

정면을 응시하는 OO이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라보자, OO이는 말없이 앞만 보더니 저만치 휙 가버렸다.     


부끄러움, 무안, 수치, 당황, 민망,..

세상의 모든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모든 단어를 동원하여도 다 표시 못 할 그 마음이여!       

뒤에서 남의 험담을 하다가 들킨 만큼 더 부끄러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 이후 졸업할 때까지 속 좁은 나는 OO이에게 사과하지 못했고, 제대로 눈길을 맞추지 못했다.     

그리곤 고등학교 시절 다시 만났는데, 나처럼 말이 별로 없는 친구로 변해 있었다.

나는 항상 내 마음에 켕기는 것을 가슴속에 품고 OO이를 바라보아야 했고, 

둘이는 별 깊은 교류 없이, 아는 둥 마는 둥 바라보며 조용하게 질풍노도의 시절을 보냈었다.     

     

다시 만난 건 OO이가 사관학교를 졸업 후, 귀신 잡는 대한민국의 해병 장교가 되어 있을 때였다.

그때 OO이는 군기가 바짝 든 정도가 아니고, 눈에는 형형한 광채 비슷한 것이, 

일종의 살기(?)를 느낄 만큼 눈빛이 강렬해져 있었고, 나는 그 눈빛이 그때의 나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마음은 그때의 회상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서로 연락이 오랫동안 없었는데 어느 날 밤, 집으로 전화가 왔다. 

’ 충성!‘으로 시작하는 OO이의 목소리였다.

반갑다 한번 만나자 해놓고는 결국 또 만나지 못하고 나는 원하던 대구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한 번의 전화로, 스스로 그 부끄러운 기억이 용서가 되어,

어린 시절의 그 기억도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다시 많은 세월이 흐르고 우리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두어 번 만났지만, 

끝내 그때의 일을 꺼내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OO아!

자네도 그때 그 일을 기억하고 있나?

얼마나 나를 치사하고, 잘고,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겠나?     


평생을 살면서 벗어 내어야 할, 마음속의 수많은 짐 들 중에서, 

이제 이 고백으로서, 너에 대한 내 마음의 짐은 벗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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