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틀무렵 Jul 26. 2022

일 년 반 백수의 소감(小感)-5

기업가, 개인사업자님, 자영업자님. 존경합니다.

걷기 운동차 하는 서울 구경도 이제 옛 도성을 기준으로 치면 동북쪽은 거의 속속들이 가본 듯하다. 가는 곳은 주로 고궁이나,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과 큰 시장이다. 과거 모셨던 CEO 한 분은, 회사 경영에 생각할 것이 있거나, 머리 식힐 일이 있으면 남대문 시장에 가서, 상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가다듬는다고 하셨는데, 시장은 여행에서도 흥미로운 장소이자, 세상과 삶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창구임이 틀림없다.      


오래전부터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전통시장이라는 광장시장을 가보고 싶었다. 집에서 걸어가기 딱 좋은 거리인데 특히 빈대떡이 유명하다고 해서, 거기에 막걸리 한 사발을 혼자 즐겨 볼까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홀로 먹는 청승맞은 모습이 그려지면서 실행하지는 못하였다.      


막 코로나가 좀 주춤해지는 시기여서 인파는 북적였고, 동전파스, 호랑이연고 등, 외국 물품과 다양한 먹거리는 과연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날은 유독 내 눈에 크게 다가오는 시장 안의 조그만 점포와 길가의 자전거포, 지물포, 열쇠 가게 등 오래된 가게에서 일하시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연세가 드신 분 들이었다. 저 연세에도 저렇게 일하시는데 나는 뭐지나는 왜 이렇게 무위도식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자, 대낮임에도 시장 안을 밝혀 놓은 꼬마전구가 만든 화려함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 생각만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내 뜻으로 한 번의 이직을 했지만, 삼십여 년의 긴 시간을 오로지 한 우물에서, 후배들이 모토로 삼고 싶다는 정도로 적절한 승진과 오랜 시간을 평탄하게 회사생활을 마친 행운아이다. 그러나 지금은 끊어져 버린 그 튼튼한 동아줄을 아직도 조금 아쉬워하며 방황(?)을 하고 있는데, 저분들은 누구의 강제 없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까지나 일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인생 출발을 잘못했나 하는 잠깐의 후회와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면서, 아내에게 오늘은 어디를 갔다 왔고 어떻더라는 짧은 소감을 말하는 게 루틴이 되다시피 했는데, ‘장사하시는 분들이 부럽더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는 ‘속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마소!’하며 단칼에 잘라버린다. 아내는 혹 퇴직금으로 친구와 동업하거나 사업을 하면 ‘바로 이혼이다!‘라고 처음부터 나에게 으름장을 놓았는데, 내가 그분들의 애로를 모르는 것을 나무람과 함께, 혹 다른 마음이라도 먹을까 싶어 또 못을 박은 것이다. ‘하 참그분들 애로를 왜 몰라. 나이 들어서도 일하는 것이 그냥 부럽더라고.’하고 대꾸를 했다.     


언젠가 집 부근에서, 식당을 새로 오픈하는 가게를 보았다. 식당 앞에는 예의 축하 화환 몇 개와, 초, 중학생 정도의 그 집 아이들이 가게 안을 다니면서 희망에 부풀어 들뜬 모습을 보았다. 번창하기를 바라면서 퇴근길마다 가게를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날마다 줄어드는 손님에 이어, 주인 혼자 가게에 앉아있는 날도 보이다가, 결국 또 다른 가게가 들어서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 인생을 걸었던 그분과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도 새 가게를 보면 유심히 보는 버릇이 있다. 번창하기를 바라면서.   


큰 기업을 창업하고 이끌어가는 분들, 몇 명의 직원으로 운영하는 소규모 회사, 가족들과 조그만 식당이나 가게를 생업으로 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은 주인이 자신을 모두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본인은 물론 종사원들까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위험에 늘 서 계시는 분들이다.   

        


회사원들도 힘들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나도 그렇게 살아온 부류 중의 한 명이다. 업무 고민으로 수많은 밤잠을 설치거나, 젊은 시절에 사무실 책상에서 하루 한 시간씩 자면서 일주일을 버티어 본 적도 있고, 6개월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자정을 넘어 퇴근한 적도 있다. 스트레스를 애꿎게 가족들에서 풀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원들은 회사라는 큰 울타리가 있고,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가지는 않는다. 조금의 실수가 있을지라도 감싸주는 주변들이 있고 힘이 되는 동료와 상사, 부하들이 있다. 늘 기댈 구석이 있다.      


그러나 기업가나 자영업자는 다르다.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혼자 책임을 감내해야 한다. 그 무거운 중압감을 생각하면 나도 가슴이 저릿하다. 회사를 은퇴하니 지금에야 그런 소리를 쉽게 한다고 하겠지만, 기업을 지탱하는 버팀목인 회사원의 애로를 낮잡아 보는 게 아니라 책임과 결과의 고뇌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회사를 나오는 순간 지옥이더라는 말이 유효하다면 아마 대부분의 회사원들도 동의하리라 믿는다.     

     

사업하는 친구들과 소주잔 기울일 때, 이런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친구지만 사업하시는 분들 진심으로 존경한다. 자네 참 대단하다.’라고 하면, ‘정말? 진짜로 그리 생각하나? 고맙다.’ 하면서 심지어 살짝 눈물도 글썽이는 것을 보면 내 생각이 매우 틀리지는 않으리라.


         

작가의 이전글 뒤늦게 하는 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