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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Sep 28. 2022

그 녀석,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2)

그런데 그 여름에 나를 울리고 입양의 축복을 받고 떠났던 녀석이 얼마쯤 후에 다시 돌아왔다. 어느 날 아내가 보육원에 갔더니 그 녀석이 다시 와 있더란다. 그 소식을 문자로 받는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입양은 3개월간 같이 살면서, 적응 기간을 숙려 하고, 또 진정 키울 능력이 있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이 모든 것이 충족되면 정식 입양이 되는데, 3개월을 한 십 여일 남짓 남긴 시점이었다.    

  

혹여 파양(罷養)이 되었을까 너무나 놀라 자초지종을 따지듯 아내에게 물었다. 입양하려던 부모가 일이 있어  잠시 맡긴다고 했다기에 안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의 옷이며, 장난감 등을 큰 가방에 잔뜩 싸서 보냈다는 것도 그렇고, 하필 십여 일 남은 상태에서 보낸 것도 그렇고, 혹여 마음이 변하여 다시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이 다시 맡길 때 부모 모두가 펑펑 울고 갔다는 말에 아니겠지 하는 생각도 했고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다음 주말에 집에 데려왔다. 퇴근하니 딸아이와 벌써 어울려 놀다가 나를 보더니, 석 달이 지나도 알아보는지, 헤벌쭉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다행히 고급 옷에 귀티가 나는 얼굴로 변해 있었다. 또 말은 얼마나 많이 늘었는지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활달하고 행동에 자신감이 있어서 새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잘 지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룻밤 데리고 재우면서 또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속에 비가 내렸다. 다음날 케이크를 사서 곧 다가올 그 녀석의 생일을 미리 축하하고 보내주려 했는데, 축하노래를 채 다 못 부르고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흐르는 눈물을 씻어 내려야만 했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다. 다시는 데려오지 마라.       

    

그런데, 며칠 뒤 그 녀석이 또 집에 왔다. 수두가 걸려서 격리될 처지라서 데려왔다고 한다. 다시 반가운 맘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또 이별의 아픔을 어찌 감당하랴 싶은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주일을 같이 있으면서 밤마다 약 발라주고 가려운데 긁어주고 애처로이 지켜보며 보냈다.     


날마다 혹 소식 있었냐고 아내를 채근하니 아내도 알 수 없는지라 서로 답답하기만 했지만, 그 녀석의 목걸이를 자세히 보니 새 부모의 폰번호가 적혀 있는 미아 방지용 목걸이였다. 희망을 느꼈다. 다시 데려가지 않을 생각이면 전화번호가 적힌 목걸이를 걸어 주지 않았겠지 하고.     

전에는 늘 헤어질 때 늘 울더니만, 이제는 보육원에 가도, ‘준이는 안 울어’하는데 그게 더 미어졌다.     


그게 또 이별이었다. 혹 일이 잘되어도 시간은 좀 걸리려니 생각하고 아무리 가슴이 아파도 한 번 정도는 더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분들이 와서 데려간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보육원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으로 아내도 못 갈 입장이었고, 내게 보고 싶으면 가보라던데 자신이 없었다. 마음을 감당치 못하고 눈물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리하면 그 녀석의 부모님들께 대한 예의가 정말 아니겠다 싶었고 우리가 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의심이나 한 것이 너무 죄송스럽기도 했다. 며칠 뒤 아내가 정기적으로 거기에 가는 날에, 세세하게 물어보고는 문자를 보내주었다.

‘엄마, 아빠 손잡고 룰루랄라 갔다고 하니, 이제 고마 잊어 뿌이소!‘     


아마도 우리가 너무 그리워하니 한 번만 더 보여주고 축복의 길로 보내려는 하늘의 뜻이라고 아내와 나는 믿고 있다. 그래도 녀석이 처음 입었던 옷가지 몇 개와 신발과 양말 짝 그리고 노리개 몇 개는 조그만 상자 속에 봉인되어 우리 집 장롱 어딘가에 깊이 간직되어 있다. 이건 버리지 못하겠다는 아내의 고집으로.


두 번째의 영영의 이별은 첫 번째 이별보다 아프지 않았다. 첫 번째 이별에서 너무나 아팠기 때문이기도 했고, 드디어 그 녀석이 행복을 찾아간 것이 확실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해마다 그 녀석의 생일이 되면, ’우리 준이 이제 중학생이 되었겠네‘,  ’고등학생이 되었겠네‘ 하면, 식구들 모두가 태연한 척하지만 잠시 깊은 정적이 흐른다. 가슴속 깊이 깃들어 있는 그리움을 꺼내어 보는 것일 것이다.     


......

그 녀석, 이제 스물한 살의 청년이 되어 어느 하늘 아래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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