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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Oct 11. 2022

무괴아심(無愧我心)

고조부님의 호(號)는 ‘무괴당(無愧堂)’이다. 어릴 때는 그 어감이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강’, ‘농암’등 의미와 어감이 아름다운 이름도 많은데 하필 고조부님은 호를 그렇게 지었을까도 생각했다. 철이 들고 어른들로부터 그 뜻이 ‘없을 무(無), 부끄러울 괴(愧)’ 즉,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뜻을 알게 되었다. 아마 고조부님의 호는, 명(明)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유기(劉基)’의 “豈能盡如人意 但求無愧我心(개능진여인의 단구무괴아심),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뜻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만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구할 뿐이다‘에서 뜻을 따서 호로 삼으신듯하다. 어떤 삶을 사셨는지는 정확히 알지는 못하나, 고조부님의 묘 갈문(碣文)을, 안동지역의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자 당대의 유학자였던 ‘해창(海窓) 송기식(宋基植)’ 선생께서 후대에 손자들(조부님들)의 청으로 지었다고 갈문에 적혀 있는 것을 보면 크게 부끄러운 삶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갈문(碣文):묘소 앞에 세우는 비석에 새기는 글

     

몇 년 전,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내부자’를 보다가 영화 속의 악역 논설 주필의 방에 ‘무괴아심(無愧我心)’이라는 글이 있는 액자가 걸려있는 장면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대부분 관객은 그 장면의 배경으로 쓰였던 액자를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조부님의 호가 떠올라 장면의 인물보다 그 액자에 더 시선이 머물렀다. 영화를 본 지 오래되어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인 안상구(이병헌)와 대척점에 있던 언론인 이강희(백윤식)는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펜 하나로 세상을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인데 심지어 글을 못 쓰게 오른손이 잘린 후에도, 왼손으로 펜을 놀리겠다는 나쁜 언론인으로 그려졌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널리 알려진 문구가 아님에도 굳이 ‘무괴아심’이라는 글을 영화의 소품으로 사용한 감독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펜 하나로 세상을 유린하며 권력과 부을 탐하던 언론인을 내세워, 언론과 언론인에게 경계의 뜻을 보내고 싶지 않았을까. 착하지 않은 조폭들이 ‘차카게 살자’라고 신체(身體)에 문신(文身)하듯이, 무괴아심’이라는 글로 그의 정신(情神) 세계를 ‘문신(文神)’하고 풍자한 것이 아닐까?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나라가 둘로 쪼개져 있다고 한탄을 한다. 오히려 갈수록 더 심화하고 있다. 어느 사회나 갈등이 있고 그 갈등이 토론과 논쟁을 거쳐 합일이 이루어지면서 사회가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깊이 박힌 이 심각한 문제는 도무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 문제는 어느 분야보다 정의롭고 공정해야 할 언론이 앞장서고 있는 듯하다. 언론마다 지향하는 기조와 정신이 있는 것은 당연하나, 지금의 언론은 정치의 진영에서 상대의 흠집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내 편의 흠결에는 눈을 감고 상대방의 흠결에는 미주알고주알 트집 잡기를 일상화하고 있다. 이것이 진정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언론인지, 자기 편만의 카타르시스를 해소해주는 O튜버들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언론은 권력이다. 여러 권력 중에서도 스스로 삼가고 절제하고 가장 정의로워야 하는 권력이 언론 권력이다. 그러나 표현과 여타 권력보다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발판으로, 한쪽만 바라보는 일부 언론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초등학교 초에 ‘자유’라는 단어의 의미를 처음으로 배웠다.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던 우리는, 친구의 엉덩이를 이유 없이 걷어차고는 ‘이건 내 자유다’라며 킬킬대곤 했다. 지금의 일부는 마치 자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학생 같다면 과한 걸까. 언론의 자유라는 다섯 글자의 행간에는 ’(공정에 기초한 사실만을 보도하는)언론의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의 숨은 글자가 있을 것이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그때의 언론처럼, 정의롭고 국민의 가슴에 뜨거운 긍정의 열망을 타오르게 하는 한 점 부끄럼 없는 ‘무괴아심’의 언론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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