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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Aug 04. 2022

글을 쓴다는 것

- 두렵고 어렵다

브런치에 운 좋게 작가(?) 인증(인정이 아닌)을 받은 지 석 달, 무위의 시간을 조금이라고 지우고자 글이랍시고 쓰고 있기는 하지만 쓸수록 어렵고 두렵기만 하다. 그 이유는 대략 세 가지로 생각을 한다.


우선 내가 인증을 받은 이유는, 글 쓰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분야에서 오래 일했다고 신청서에 기재한 것을 보고 뭔가 특출한 주제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와 함께, 세태에 맞게 톡톡 튀고 재미있는 글을 쓰는 젊은이 속에서 노틀이 더러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운영자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나 갈수록 주제는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팥죽의 거품이 터져 튀듯이 이리저리 방향 없이 날아다니고, 능히 작가라 할만한 분들의 글을 볼 때마다 나의 박재(薄才)에 한숨만 깊어지는데, 오만 명이 넘는다는 브런치 작가들에서 나에게만 특별한 모니터를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니 그나마 다행히 아닐까 한다.


두 번째로, 내가 쓰는 것은 글이라기보다 비문(非文)이다.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들을 보면 모든 분이 어쩜 그렇게 글 같은 글을 쓰는지, 나는 신변잡기 수준의 주제를 퍼질러 놓고 그것을 다듬는다고 하지만, 궁극에는 지쳐서 뭔가 아쉽고 볼품없는 정도에서 항복하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 발행‘을 누르고야 마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더구나 어느 분이, 글 같지 않은 것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일갈(一喝)을 하는 글을 보고 더 주눅 들고 암담하기만 했는데, 비수같이 꽂히는 것이 또 있었다. 수필과 에세이가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수필은 중수필(重隨筆, 에세이)과 경수필(輕隨筆, 미셀러니)로 나뉘고, 에세이는 문학이며 쉽게 창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잡다한 ‘, ’자질구레한’의 뜻이 내포된 ’ 미셀러니(miscellany)‘를 주절대고 있는 나는, 애초에 문학을 할 요량도 아니었고 글을 발행할 때마다 ‘잡문(雜文)’이라고 키워드를 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위 두 개의 이유가 자질과 소질에 대한 회의라면, 세 번째의 이유는 기본과 지식의 부족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무식하게도 나는 책을 만드는 데에, 작가와 편집자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최근에 책을 한 권 읽고서 작가의 문장을 전문적으로 교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말이 어렵다고들 하나 뭐가 어렵지? 했던 오만함도 나의 무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도서 : 동사의 맛, 김정선)
      

예로 다음과 같은 것인데,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 외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 남의 속을 떠보거나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을 가늠해 볼 때 ‘간보다’를 쓰는데, 이는 ‘깐보다’가 맞는다.

   - 돈이 ‘모여지다’는 어법에 맞지 않는다.

   - 짚단이 단숨에 ‘베어졌다‘, 또는 ‘베여졌다‘라고 쓰지 않는다.

   - 일의 허용이나 가능 여부를 따질 때 쓰는 ’되다‘의 반대말인 ’안 되다‘는 띄어 쓴다.

   - 일정한 수준이나 정도에 이를 때 쓰는 ’되다‘의 반대말인 ’안되다‘는 붙여 쓴다.

   - ’꿈꾸다‘는 붙여 쓰고 ’꿈 깨다‘는 띄어 쓴다.     


수동태도 어렵고 접속사도 어렵고 띄어쓰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아래 한글’은 문장을 쓰자마자 태반이 빨간색으로 밑줄이 그어지고 있다. 틀렸소!라고. 만약 한국어 자격시험을 본다면, 아마도 한 40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몇 가지 생각을 해 보니, 제대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된 작업이라는 것이 더 느껴지며 프로작가들을 더욱더 우러러보게 된다. ‘브런치‘의 존재를 몰랐던 나는, 회사 후배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따라 하여 운 좋게 인증을 받았는데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왕에 하는 거,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어, 가까운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강좌를 신청하고 개설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수강 신청자가 열 명이 안 되면 강좌가 폐지된다는데 기다려 볼 일이다. 깊은 공부를 하기보다 도무지 글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 기초라도 알고 싶을 뿐이다.

     

참. 지금 문법 공부를 하는 것은 외국어 공부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아, ‘한글’과 ‘브런치의 맞춤법 검사’에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때마침 읽은 이어령 선생의 저서에서 큰 위안을 받은 글을 얻었다. '황토'라고 쓰기보다 ‘황토 흙‘을 고집했던 선생은, 비록 ’ 역전앞’과 같을지라도 그래야 고향의 붉은 산들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말은 수학이 아니다!’ 라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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