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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Aug 11. 2022

새벽 산행

장마와 폭염으로 제대로 산을 타 본 지가 꽤 되었다.

동네 뒷산은 더러 저녁 짬이나 아침을 이용해 아내와 같이 가보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는 산을 갔다고 말하기는 좀 쑥스럽다.

적어도 서너 시간은 몸을 아예 산에 맡기고 있다가 와야 오른 것 같으니.     


새벽에  올라가 동틀 때의 그 미명도 보고, 일출도 한번 보리라 주말마다 마음먹지만, 

금요일마다 습관처럼 해온 음주와, 또 게으름이 겹쳐서 영 맘대로 안 되었다.     



‘내일 네 시에 일어나 등산 간다‘. 아내는 ’당신 가면 나도 가야지‘. ’그러지 뭐‘

저는 내가 못 가리리라 생각하고 그리 말하고, 

나는 저가 절대로 못 따라올 줄 알고 그리 대꾸하였다.

같이 다니면 좋기야 하다만, 내가 등산해야 하는 양에는 반도 못 채우고 돌아와야 하니, 

좀 멀리 넉넉하게 하리라 이렇게 마음먹을 때는 혼자가 좋다.

     

알람을 맞추고 잠들었다.

그러나 내 신체 리듬은 그 알람을 믿지 않는가 보다.

새벽녘, 꽤 똘똘한 정신으로 깨서 시간이 지났는가 보다? 알람 소리를 못 들었나? 했는데,

새벽 세 시밖에 안 되었다. 신체가 스스로 긴장하며 잔 모양이다.

한편으로 안도하며 새로 잠을 청한, 얼마 뒤 알람 소리가 자지러졌다.

     

아내가 애면글면 아끼는 자외선 차단 크림을 찍어 바르고,

배낭 찾고, 물 챙기고, 오이 한 개 쑤셔 넣고 나니, 네 시 반이 넘어버렸다.

해돋이 보자면 좀 바쁘겠구나.     

     

산자락 입구에 도착하니, 컴컴한 하늘과 그보다 더 시커멓게 대비되는 

산 능선이 나를 위압하였다.

하늘에는 반쪽이 채 안 되는 달이 깨어진 거울처럼 걸려있었다.  

   

달빛은 괴괴하게 있으나, 숲 속까지 들어오기는 힘드니, 산길은 깜깜하다.

한참을 적응한 후에야,

여인의 속살 같은 등산길이 뿌옇게 그 모습을 구불구불 드러내었다. 

    

벌써 플래시 든 한 분이 내려오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 건네고, 나도 웃음으로 받았다.

그러나, 이분이 처음이자 마지막. 내가 내려올 때까지 더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어두우면 어떠랴. 대충은 머리에 있는 길인데.

산은 자고 있으나, 거기에 깃든 생물들은 벌써 깨어 있었다.

수풀 속의 풀벌레는 저마다 나름의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고,

간간이 들려오는 푸드덕하는 소리는, 이 여름 끝 가기 전에 유전자를 이어 놓으려는 

번식의 본능이 하는 몸짓이렷다.

    

올라가는 내내, 뭔가 끈끈한 것이 팔이며 얼굴에 마구 휘감긴다.

거미줄인가? 산적처럼 곳곳에 쳐 놓은 함정인가, 그물인가?

거미야! 미안하다,

밤새 네가 노력한 수고가 나의 무자비한 진군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구나.

나는 이 산 주인이 아님이 분명 하나,

너는 이 산의 주인이라고 해도 된다만, 오늘만 내가 이 길을 잠시 빌린다.

     

조금은 무섬도 느낀다. 혼자보다는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터넷 동호회나, 동네 산악회 한번 가입할까?

점점 살면서, 어떻게든 씨줄 날줄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인간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만, 또 거기에 따르는 구속과

시간과 조금의 비용 투자 등으로 선뜻 내켜지지는 않는다.

     


마음이 급하다. 

벌써 왼쪽 동편 하늘은 시커먼 산자락 뒤로, 

마치 억지 눈물 터뜨리려는 떼쓰는 아이의 눈자위처럼 불그스레 물들어 오른다.

한때의 어느 권력의 이인자(二人者)는 인생의 마지막을 저녁놀의 지는 해처럼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떨어지는 저녁놀을 우리 것이라 하기엔 너무 이르고,

저 떠오르는 동편의 태양을 우리 것이라 하기에는 좀 늦겠지. 

우리는 중천에 떠 있는 뜨거운 태양쯤으로 치자. 

         

중간의 쉼터도 쉬지 않고, 걸으면서 목축이고 그대로 지났다.

처음 만나는 능선에 섰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내가 보고자 했던 것.

     

아래쪽 낮은 산들은, 높고 낮음과 멀고 가까움에 따라, 

먹물의 농도를 달리 한 그림을 그렸다. 농도는 더 묽어도 좋을 뻔했다.


사이사이 박힌 동네의 아파트는 평소 보던 회색빛 우중충한 구조물이 아니다. 

석류 속에 박힌 씨앗같이 이 새벽의 하얀 결정체들이다.    

 

오늘 내가 종착하고자 하는, 도시 경계를 넘은 오른쪽 마을은 더 신비롭다,

사방이 산에 둘러싸인 광대한 들판과 집들.

그리고 옴팍하게 파진 들판 -그릇 같은 공간 위로 구름이 날리듯이 떠 있고,

여인네의 치마 같은 구름을 두른 산들은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일출에 좀 늦어, 사진작가가 찍어놓은 것 같은 그런 해돋이를 못 보면 어떠리.

방금 내려다본 주변의 모습만으로도 오늘의 산행은 충분한 의미를 얻었다.     

이젠 서쪽에서 올라가므로, 해가 하마 올랐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혹, 뜨기 전 올라가려고,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옮긴다.

내 모습은 연신 뜨거운 김을 내뿜는 한 마리 황소의 밭갈이다.

     

아깝다.!

태양이 나를 먼저 보았겠다. 

봉우리 서쪽에서 올라서는 내 머리 정수리를.

멀리 푸른 바다 같은 산 위로, 한 일 미터쯤은 벌써 올라와 아주 아주 빨간 한 점,

둥근 천체는 나를 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다. 

오늘, 현재 이 시각, 이 산은 잠시 나 혼자만의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이 잠시 스친다.

이십여 평 정상의 땅을 빙 돌아보니, 하늘의 동편 반은 보랏빛 구름이 산과

하늘의 경계에 걸려있다.

산 아랫마을 어디쯤, 어느 부지런한 개들의 컹컹 울부짖음이 멀리 들린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대 아직 자는가? 정상이다. 하늘은 열렸고, 반쪽 달은 이마 위에 걸려있다.’          

오이 반개, 한 모금 물로 숨 돌리고, 가자. 저 하얀 치마 두른 여인에 품으로.

보아온 길로 내려갔다.


길이 보일 듯 말 듯 이어지더니, 기어이 철탑 세워진 곳에서 끝이다.     

다시 올라와 헤매다 보니, 잔솔가지가 융단같이 깔린 곳으로 길이 있다.

저 길은 나를 속이지 않겠지? 그러나, 어느 이름 모를 무덤에서 길은 멈추어 있다.

미로에 갇힌 생쥐처럼, 이리저리 뚫어 보려 하지만 길은 없다.

그새 고개 들어보니, 흰 치마 두른 여인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뵈지 않는다. 

    

아쉽다, 숙제로 남기고 전에 몇 번 다녔던, 골짜기로 내려오는 길로 하산할 수밖에.

이 길도 나쁘진 않다.

칠백 미터의 고지와 평지를 십리 길에 걸쳐서 느릿하게 연결하는 골짜기 길이다.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의 물은 좋으나, 딱딱한 시멘트 포장길이 아쉬운. 

        


완전히 깨어난 내 몸의 세포들은, 더욱더 힘차게 움직이자고 한다.

길 좋은 곳은 뛰어보기도 한다. 얼음 녹은 물통은 등 뒤로 달그락거리고.

     

    멀리서 한 아이도 뛰어간다. 

    멜빵 가방을 메고, 필통인지, 도시락인지 달그락거리며, 골목길을 돌아서

    엄마! 하고 부르며 사립짝 같은 나무 대문을 밀친다. 

    늘 땀으로 젖어 계신 엄마는 자주 그랬다.

    ‘이놈아. 좋은 집, 부잣집 찾아가지 누더기 같은 여기는 뭐 하러 들어오노.’ 

    

우리 동네 입구쯤에 멈춰, 내가 늘 앉던 계곡 바위에 앉아 얼굴을 씻고 발을 담갔다.

아침이슬에 흠뻑 젖은 등산화에 붙은 풀들과 흙을 털어 내고는, 한참을 머리 비우고 앉아 있었다.  

        

풀벌레 소리는 어느새 잦아들었고, 

입추의 매미 소리만 죽어라 자지러지고 있었다.  [2004.08.07 立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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