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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Aug 01. 2022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는 단순한 이유

’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라.' 

이런 말은 하는 이들은, 지금 자신이 존재하는데 얼마나 많은 조상의 유전자를 받았는지를 생각해보면, 자신은 소중한 존재 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모님 두 분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부모님도 각각의 두 분(나의 외, 조부모님)으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외, 조부모님께서도 부모님이 계시고, 이렇게 4대(고조부모)까지만 거슬러 가도, 나에게 유전자를 물려주신 분은 열여섯 분이나 된다. 즉 4대 조상 시기의 열여섯 분이 없었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열 세대, 약 삼백 년-사실 까마득해 보이지만 그리 머지않은 시간이다-까지 거슬러 가면 2의 10 제곱인 1,024분의 그 당시 조상의 유전자가 내게 내려온 것이다. 즉, 세대를 올라갈수록 2의 제곱승만큼 조상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렇군 하겠지만, 20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략 백만 명 정도이고 약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20세대 전이면 대략 조선 초기이고, 그때 인구는 약 오백만 명 정도였다는데, 그럼 당시 인구의 20%가 나의 조상이란 말인가?     


이제 건너뛰어 40세대, 약 1,200년을 거슬러 가보자. 이것도 까마득하겠지만 인류 역사로 보면 얼마 안 되는 시간이다. 계산으로는 2의 40 제곱승이니 1조가 훌쩍 넘는다.  [2^(40) = 1,099,511,627,776] 

나의 40대 조상은 동시대에 1조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의 유전자에 관여를 한 것인데, 1조 명의 인구는 유사 이래 지금껏 태어났던 인류 전체를 다 더해도 어림도 없는 숫자이다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얼마 전, 고교동기 자녀의 결혼식에 갔다가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였다. 고교 때는 키순으로 지정되는 자리에 따라 친밀도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친구는 작은 쪽에서 스무 번째 정도였고, 나는 큰 쪽에서 스무 번째 정도여서  그리 친하지는 않았다. 식사를 같이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해보니 그 친구는 나의 조모님의 고향 동네 출신이었다. 나도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그 동네에 세배를 간 기억도 있었고. 즉 아버지의 외가, 즉 나의 ’ 진외가’ 동네였다. 나중에 내 조모님 함자(銜字)와 생몰(生沒)은 알려줄 테니 자네 집안과 혹 어떤 관계가 있는지 찾아보자 하고 헤어졌다. 

(진외가 : 아버지의 외가, 외외가 : 어머니의 외가, 선외가 : 선대의 외가)     


며칠 뒤, 족보를 찾아 조모님의 아버지(즉, 아버지의 외조부) 함자와 함께, 조모님 함자와 생몰을 그 친구에게 보냈다. 결과, 내 조모님의 아버지는 그 친구의 고조부였고, 그 아들인 증조부들이 조모님의 오빠들이자, 아버지에게는 외삼촌들이었다. 따져보니 그 친구는 나의 7촌 조카뻘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부계사회라 친가 쪽의 친척은 중히 여기나, 외가 또는 진외가 쪽은 성인이 되면 자꾸 멀어진다. 그러나 유전자 관점에서 보면 친가의 7촌이나, 진외가의 7촌이나 똑같다. 7촌이면 남과 같다고 하겠지만, 추석날 선산에 성묘할 때 최대 13촌까지 가계가 벌어진 우리 집안으로는, 7촌은 아주 가까운 사이다. 반갑고도 신기한 일이었다. 앞으로 만나면 오랫동안 헤어져 살았던 형제를 만난 듯 좀 더 살갑게 대할 것 같다.        

 



한 사람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조상들의 이해 못 할 숫자를, 학자들은 ‘공통 조상‘이 아니면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안 되지만, 그 친구의 고조부가 나에게도 유전자를 물려주었으니, 그분은 친구와 나의 ’ 공통 조상‘이 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한다. 즉 40대 이전의 1조가 넘는 사람이 전부 각각 생존했던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가계가 다른 여러 후손의 공통 조상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이 명제는 도저히 성립이 안 되는 것이다     


유전학자들은 어머니에게 딸에게 변하지 않고 전해지는 DNA인 미토콘드리아를 추적하여, 지금의 유럽인들의 95% 이상은. 1만 년~4만 5천 년 사이에 생존했던 단 7명의 여성의 후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신기하고 언뜻 수긍도 어렵지만, 몇십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소수의 유인원이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여 70억 인류를 퍼뜨렸다고 생각하면 이는 매우 타당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더구나 중간에 도태되고 후손을 남기지 못한 경우도 얼마나 많았을까를 생각하면 인류는 상당히 압축된 공통 조상을 갖고 있음은 틀림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어제 길에서 지나쳤던 생면부지의 사람, 저 멀리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들, 아마존 밀림의 부족, 이 모든 사람과 나는 시간을 거슬러 가면 어느 한 사람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날마다 싸우고, 욕하고, 미워하면서 살수 밖에 없는 것일까? 

나를 포함하여.     


저 멀리 깊은 정글을 품은 높은 산꼭대기,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커다란 나무의 우듬지에, 어깨가 구부정한 유인원 한 분(?)이, 기다란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서 있다. 

에휴자식들이라고 하는 것들이 맨날 싸우고죽이고서로 미워하기만 하니... 에이 쯧쯧..‘ 하며 호모 사피엔스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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