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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Sep 19. 2022

때로는 ‘호들갑’도 필요하다

2006년, 당시 내가 근무하던 지역에 큰비가 내렸다. 당시 주말부부 생활로 근무지인 안양을 떠나 주말을 이용하여 모처럼 대구 본가에 내려가서 느긋하게 휴식을 누리고 있던 참에, 경기도에 예보되지 않은 큰비가 내린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부리나케 짐을 싸서 다시 안양으로 복귀하였다. 책임자가 관할지역을 떠나 있을 때 상황이 발생하면 그보다 더 난감한 일이 없으니, 안양에 도착하니 우선 안도감부터 들었다. 그런데 안양지역은 비가 거의 오지 않고 햇살까지 더러 비추고 있었는데, 뉴스에서는 남한강이 범람할 수도 있다는 소식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범람 우려 지역에 관할 건물이 있어 직원들에게 비상 출동을 지시했다. 아무리 회사 일이지만, 휴일에 출근을 지시할 때의 그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각 건물 인근에 사는 직원들에게 출동하여 대기할 것을 지시하고, 안양으로도 직원들을 불러내고 동분서주하며 할 일을 챙겼다. 중요한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는 건물이 침수되는 일은 한 번도 전례가 없었기에 설마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에는 ‘설마’보다는 ‘만약’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이다.     


뉴스와 해당 지역에 있는 직원들과 수시로 상황을 확인하니, 강둑에 일 미터 정도까지 물이 차올랐다는 보고에도 사실 우리가 할 일은 없었다. 할 일이라고는 침수가 되면, 사후에 어떤 비상조치를 할 일을 정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밤이 깊어지자 비도 그쳐 가고 수위도 내려가고 있다는 보고와 뉴스를 접하고는, 비상 출동시킨 직원들 귀가시키고 혼자 사무실을 지켰다. 새벽까지 지켜보고 완전히 안정화되었다고 판단된 후, 회의용 큰 테이블에 큰 대자로 누워 잠을 청했다, 사실 그 잠자라기 불편한 것 같아도 긴장이 풀리고 뒤이어 오는 마음의 안온함이 더하여 항상 꿀잠을 잘 수 있는 매우 편안한 잠자리이다. 지금도 불면의 밤이면, 옛날 사무실 회의 테이블에서 잠들기 전의 몇 분간의 그 안락한 감정이 그리워지곤 한다.     


아침에 두런두런 출근하는 직원들 소리에 잠을 깨어 부스스 일어나 담배 피우러 갔더니, 능력 있고 아끼는 팀의 선임급 과장이 ‘별것 아니었는데팀장님 호들갑 너무 떤 것 아닙니까?”라며 약간의 불만 섞인 애교 있는 항의를 한다. 속으로 조금 섭섭했지만 “원래 이럴 때는 호들갑을 좀 떨어야 문제없이 넘어가더라” 대꾸했다. 이는 간절한 바람이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되더라는 오랜 경험에 의한 말이었다. 아무튼 가슴을 쓸어내린 사건이었고, 그 ’호들갑 떤다‘라는 팀원의 말이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팀장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려 주지 못한 그 팀원의 말이 꽤 섭섭했던 모양이다.     

     

이 기억이 떠오른 것은, ’호들갑‘이란 단어가 얼마 전 태풍 ’힌남노‘시에 언론에 오르내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까 별것이 아닌데, 지도자가 과하게 대응하고 호들갑을 떤 것이 정치적 목적이었다는 등의 시비를 덧붙여.     


우선 태풍이 별것 아니었다는 것은, 남의 심장에 박힌 가시보다 내 손톱의 부스러기가 더 아프다는 타인에 대한 공감의 부족이 아닐까 한다. 나라의 중심인 서울 수도권이 조용하니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죽음과 막대한 피해에 대해 둔감한 것이다. 특히 지하 주차장에서 잃은 생명 앞에서는 가슴 먹먹함과 두 사람이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눈물이 글썽이기까지 했던 나이기에, 별것 아니었다는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좋은 감정을 가지기가 힘들다.

공교롭게도, 2017년 포항, 경주 지역에 상당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다른 지역 사람들은 뭐 그 정도 가지고라며 대수로이 여기지 않은 분위기였으나 당시 포항 지역의 주민들은 지진의 트라우마로 얼마간 집에서 자지 못하고, 밖에서 텐트를 치고 한 달 정도를 생활한 사람도 다수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임에도, 별것 아닌데 호들갑을 떨었다고 비아냥거린 사람들은 다른 의도가 있거나, 분명 타인의 상황과 처지에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호들갑이었다 하더라도 효과는 상당했을 것이다. 강한 대응 상태로 인해 전 국민과 나라의 시스템 전체가 긴장하고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다시 확인하고, 하다못해 배수로에 쓰레기라도 치웠을 것이고, 차수막과 모래주머니를 준비하고 각자의 안전과 나름의 대비를 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피해를 줄이는데 얼마의 효과가 있었는지의 인과관계는 정량적으로 계산하지 못하겠지만, 작은 준비가 모여서 더 큰 피해를 줄인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 앞서, 서울 강남지역에 기습폭우로 난리가 났을 때, 우중에서 홀로 배수로 쓰레기를 치운 사람을 ’배수로 의인‘이라며 SNS에서 칭송된 바가 있다. 바로 이런 것이 호들갑 떨지 못한 안이한 대비의 결과였을 것이다. 만약 기습폭우에 대비하여, 미리 배수로 쓰레기를 치워 배수를 원활히 하고, 요소요소에 사람을 배치하여 배수 감시를 했더라면 피해가 훨씬 덜했을 것이다. 알지 못할 기운이 모인다는 것은 신에의 비원(悲願)의 결과가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이 쌓이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2017년 전국의 AI-조류(鳥類)인푸루엔자가 덮쳤을 때, 경상북도 지역만 청정지역으로 남았었다. 당시 또 주말부부로 부산에서 근무했던 나는 주말에 상경하는 KTX 열차의 모니터에서, 경상북도만이 청정지역으로 남은 이유를 나름 추정하게 되었다. 모니터에 비친 경상북도의 AI에 대한 대응 슬로건은 다음과 같았다.     


’대응은 신속하게! 방역은 지나치게!‘     


지나치게’라는 단어가 마음이 확 다가왔다. 그런 것이다. 대응은 지나쳐야 한다. 더구나 인간의 힘으로서는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앞에서는 아무리 지나쳐도 과하지 않다. 비록 나중에 ‘호들갑을 떤다’는 잔망스러운 핀잔을 들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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