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틀무렵 Sep 21. 2022

秋江抒情

江이라 할 것 없다. 천(川)이었다.     


시간이 틈을 보이면. 川邊과 풍경을 벗하여 무작정 걸었었다.

東으로 가면 그 끝은 어디일까?

西로 가면 그 끝은 어디일까?

여러 갈래의 물줄기 위로 위로 가면 어디쯤일까?

물줄기를 따라다녀 본 몇 줄기의 상류와 그 끝까지.


오랜 전에 下流로, 下流로 물 따라 흘러가 이 하천의 경계까지를 회유했었는데,

미지를 탐하듯이 이 하천이 큰 물줄기와 만나는 곳까지는 가보겠다는 기대를 가졌었다 .

어림짐작으로 열두어 시간이면 족할 것이다.     

내가 거주하는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川도, 

사방으로의 여러 줄기는 늘 고산자()같은 호기심과, 나아가고픈 열망을 들끓게한다.    


여름 초입의 강은 무엇인가를 곧 吐해 낼 듯 한 꿈틀거림이 있다.

한여름의 江은 격렬함이 있다. 

누런 황톳물이 쉼 없이 흘러내리며, 대지의 더러움을 씻어내려는 포효가 있다.   

  

이젠 그 격렬함과, 포효도 사라진 가을의 강은 너무나 도도하여 차라리 슬프다.

가을 강은 수척한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다.

작열하는 여름의 뜨거운 대지에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유유히 생명수를 실어 나르다가 이제 그 생명수마저도 다하여, 

드문드문 제 속살을 드러낸 수척한 모습이 처연하다.    

 

강이 실어 나르는 생명수에 의지하며, 

깃들어 사는 무수한 생명들도, 

아직은 푸르른 기운을 간직하였지만, 왠지 모르게 기운이 빠진 듯하다.

날짐승들만 외려 제철을 만나 겨우내 소용될 지방을 축적하기 바쁘다.     


강아지풀이며, 

이름 모를 잡초들은 바람에 제 몸을 맡기고, 

바람에 홀씨를 날리려 바람보다 더 흔들리고 있다.

제철을 맞은 구절초와 코스모스만이 한껏 제 몸을 뽐내지만,

생명이 다하는 가을 강에 오히려 고즈넉함과 나른함만을 더 할 뿐이다.


여름내 물 위 세상이 보고파 텀벙 자맥질하며 펄떡거리던 피라미들도 보이지 않는다.

유유한 물속 아래에서 다가올 혹독한 계절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도심지의 조그만 川에 어울리지 않는 팔뚝만 한 잉어 떼들만, 

어느 부잣집 정원에 갇힌 관상어들처럼, 인간들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고 물속을 유영하고 있다.   

  


이 도심의 하천은 그 소년의 기억에 남아 있는 강의 미니어처로 투영될 뿐.     

소년의 가을의 강도 그런 고즈넉한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기억 속의 소년의 강은 이른 새벽부터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물안개였다.

등굣길 다리 위에서도,

일요일 아침, 강변 모래밭을 달구던 뜨거운 축구경기에도, 

이른 아침 강변을 따라 해맑던 장난을 치던 소년의 아침에도, 

물안개는 늘 우리를 휘감으며 함께 있었다.     


차갑고, 촉촉한 느낌은, 

물안개가 덮인 강둑길을 달리는 우리에게 희열과, 

우리만 이런 천연(天然)을 느끼고 산다는 소박한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또한, 이 도시의 하천에서는 느끼지 못한 희미한 물비린내였다.

강변에 서면, 늘 풍겨오던 비릿한 물비린내였다.

진했던 물비린내는 가을이 되면 점점 더 희미해졌다.     


아물아물한 강 건너편 長身의 미루나무가. 여름내 걸쳤던 잎들을 하나하나 떨구면,

그 사이로 미지의 세계 같았던 강 건너 남촌의 시골집 지붕들이 더 또렷이 보였었다.     


강돌과, 발가락 사이에서 사각이던 뜨거운 모래들이 점차 서늘해지던 이때쯤,

여름내 소년을 설레게 했던, 피라미들, 모래무지, 갈겨니, 동사리, 미꾸리,..

그 수많던 소년의 친구들도 가버리고, 

늘 왁자하던 새까만 河童들도 집으로 돌아간 이 시절쯤의 허허롭던 강변.

고즈넉한 그 강변, 그림.      


삭막한 도시의 강을 따라 걸으면서, 유년의 가을 강을 떠 올린다.

내가 이도시의 川을 보면서, 유년의 江을 생각하듯이,

또 유년을 이 도심의 천변에서 보낸, 뭇사람들은 어느 하늘 아래서 이 川을 생각할 것이다.     


千年不切의 長江... 낙동. 

다시 너와 함께 보낼 시간은 언제쯤 일까?     


작가의 이전글 때로는 ‘호들갑’도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