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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Dec 07. 2022

젊은 부부

  미장원을 가고 있었다. 뒷골목을 따라 걷는데, 길가 건물에서 젊은 한 쌍이 나오더니 내 길을 앞선다. 남자는 쌀쌀한 날씨에 맞추어 검은 반코트, 여자도 아래위로 깔끔하고 정갈한 옷 위로 코트를 걸쳤다. 뒤에서 언뜻 보아도 참으로 보기 좋은 젊은 한 쌍이다. 만약 같은 건물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연인으로 보일 것인데, 함께 나왔으니 분명 신혼부부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손을 꼭 잡고 걸으며 눈빛을 주고받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다. 남자가 여자를 보기 위해 고개를 살짝 돌릴 때, 옆을 보이는 얼굴이 자못 풋풋하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에 이어 짝을 찾을 적령기를 지난 자식들이 떠올라 부럽기까지 했다. 내 자식이 짝을 찾아 저런 모습으로 앞서 걷는다면 더 이쁠 것인데.

     

  그 풍경이 아름다워,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의 뒷모양을 보며 걷는다. 애초부터 하나의 손 인양 떨어질 줄 모르는 남자와 여자의 손은 길 위에 두 개의 그림자를 하나로 만들고 있다. 모퉁이를 돌면서 손이 잠시 떨어지자 여자의 손이 몇 번 허공을 더듬어 남자의 손등과 살짝 스치더니 자석이 붙듯 자연스럽게 다시 하나가 된다. 다시 맺은 손은 아까보다 더 가벼워 잡은 듯 만 듯하지만, 그림자는 결코 다시 둘로 갈라지지 않는다. 갈림길에서 남녀는 지하철 쪽으로 가고, 나는 다른 쪽으로 일상을 위한 걸음을 이어나간다. 아름다운 풍경에 내 젊은 날의 시간을 녹여 넣었다가 화들짝 현실로 깨어난다.


  남녀가 걸어 나온 건물은 세속의 기준으로는 사람들이 좋아라, 하는 그런 동네에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이가 원하는 커다란 ‘아파트’도 아니다. 더더구나 반짝거리는 새 건물도 아니다. 아주 서민적인 서울 옛 동네 뒤 편에 자리한 조금은 낡아 보이는 자그마한 ‘빌라’라는 건물이다. 그렇다. 저 풋풋한 젊은 한 쌍은 오래된 서울의 어느 동네 뒷골목의 아주 소박한 집에서 아름다운 출발을 시작하는 것이다.

      

  단지 나의 옛 생각을 더듬을 뿐이니 ‘꼰대’라고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세대는 대부분 자신이 번 돈으로 단칸 셋방에서 출발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신혼집은 조금 높이가 있는 언덕에 자리한,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이는 양옥집 이 층이었다. 말이 좋아 이 층이지 옥탑방과 다름없었다. 신혼살림 들일 때, 장롱을 세로 대각선으로 세우지 못할 정도로 천장이 낮아 낭패감에 젖었다가 간신히 가로로 장롱을 세운 기억은, 그 이후의 이사 때마다 추억으로 소환된다. 여름이면 낮은 천장 아래의 오래된 벽돌들은 화덕과 같은 열기를 온전히 가두었고, 집을 둘러싸고 있는 비슷한 모양의 집들은 한줄기 시원한 바람을 통과하는 것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쫄쫄거리는 수돗물을 무시로 받아, 몇 개의 빈 통마다 채워가면서 불 속 같은 여름을 보냈다. 여름날 뜨거운 열기를 가두었던 오래된 벽돌들은, 청개구리처럼 겨울이면 바깥바람을 제 먼저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불 위로 드러난 코끝으로 늘 찬바람이 지나다녔지만, 연탄아궁이는 방의 절반에도 온기를 나누어 주지 못하였고 첫아이는 늘 감기를 달고 살았다. 다시 말하지만 ‘라때는,‘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 시절에는 그런 것이 보편적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고, 그렇다고 남보다 크게 모자라게 시작한 것도 더더욱 아니었다.

      

  부모가 그럴싸한 아파트 한 채를 제 것으로 안겨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주거환경에서 새 인생을 출발해야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 지금의 세태이다. 언제부터였을까? 풍습과 세태는 딱 잘라 언제부터인지 알 수가 없다. 멀리 떨어진 곳에도 문화는 슬금슬금 전파되듯, 일부 계층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이 서서히 퍼져나가며 전체가 그렇게 되어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대들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세대가 젊은 날의 보상심리로 세태를 그리 만든 것이며, 또한 전체의 富의 총량이 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 세대 탓을 하면 아니 되는 것이다.

     

  아마도 저 젊은 부부는 길지 않은 시간의 경제활동으로 모은 알뜰한 돈으로, 힘써 그 집을 보금자리로 삼았을 것이다. 아름답다. 떨어진 손을 다시 슬며시 찾는 사랑의 행동과 얼추 짚은 내 생각이 맞는다는 가정으로 그네들의 속내는 더 아름다울 것이다. 그대들의 꼭 잡은 손과 도란도란 주고받는 말들과 사랑스레 마주 보는 눈빛이 진정 아름답다. 


젊은 부부여. 그대들은 지금 무척 행복할 것이다. 부디 삶의 목적을 남들의 둥지와 비교하여 앞서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대들만의 이 소박한 행복 속에서, 다만 오늘보다 내일이 더 피어나도록 근면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서울 오래된 동네, 뒷골목의 싱그러운 젊은 부부여. 그대들의 행복을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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