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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Dec 15. 2022

강아지가 맺어 준 인연

  인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우연히 그리고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슬며시 다가오는 모양이다.     

 

 과거에야 이웃은 짧은 시간에 ’사촌‘이 되는 관계였다지만, 지금 사회에서 이웃을 사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현관문 하나 외에는 모기 한 마리도 마음대로 들어갈 틈이 없는 철옹성 같은 아파트의 생활에서는 더 어려운 일이다. 지금 사는 아파트 주변 옛 동네는 아직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담소하거나, 여름이면 평상에 자리를 펼쳐놓고 막걸리 한잔을 놓고 형님, 동생 하는 풍경이 있다. 이 모습을 보노라면 서울에도 아직 이런 모습이 있나 하면서도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느껴진다. 고향 동네는 조금 변한 모습으로 아직 남아 있지만, 어릴 적 동네 친구, 형들과는 모두 연이 끊어져 버렸다. 왜 그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살기 바빠서였고, 그러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른들은 세상을 떠나고 친구들도 하나둘 고향마을과의 연이 멀어진 뒤였고, 또 지금처럼 통신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 이유일 것이다.

     

  도시, 특히 서울에서 이웃을 사귄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전업주부들은 어린 자식들을 매개로 학부모 모임 등을 통해 친밀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아내도 자식들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구에서의 몇 개의 모임을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장거리를 오가며 가끔 만나고 있다. 그런데 엄마들은 아직도 살갑게 만나는데 정작 아이들은 저들끼리 연락하지 않는 것 같다. 아직 인연의 소중함을 알기에는 이른 나이인가보다.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들은 그런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런데 나는 서울의 아파트에서 이웃을 사귀게 되었다. 남에게 다가가, ’우리 친구 합시다’라고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는 늘품 없는 내가 어쩌다 이웃과 좋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오로지 강아지 덕분이다.     

 

  오랜 기간 주말부부로 살다가 아이들이 하나, 둘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니 어쩔 수 없이 본거지가 대구에서 서울이 되고 말았다. 서울로 옮긴 얼마 뒤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었다. ‘분양’이 맞는지, ‘입양’이 맞는지는 애매하지만 지금 심정은 ‘입양’이라는 단어가 맞을 듯하다. 어릴 적에는 강아지를 매우 무서워했고 싫어했다. 학교 가는 길, 지름길 골목의 삽살개는 공포의 대상이어서 먼 길을 돌아서 학교에 가곤 했다. 그러던 내가 이 녀석을 데려오고 사나흘 만에 푹 빠져 버렸다. 녀석에게 왜 빠지게 되었는지는 키워 본 사람은 잘 알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느낌이 오지 않을 터이니 쓰지 않는 편이 좋겠다. 결론으로 나는 ‘강아지 데려오면 집 나간다는 우리 아빠. 지금은,‘ 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전에는 아내가 주로 산책을 시켜주러 나갔는데 자연히 동네 견주 엄마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자주 산책 시에 만나다 보니, 얼굴을 트게 되었고, 집 안 사정도 알게 되고 아주 친하게 된 모양이었다. 비록 나이 차이는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게다가 한 집의 남편이 내 중학교 후배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어, ’남편들도 한번 만나게 합시다’라는 것까지 아내들끼리 합의(?)가 되었다. 사실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한 분이 중학교 후배라는데 마냥 손을 내 저을 수만도 없었다. 삼 년 전 어느 날, 날을 잡아 네 쌍의 부부가 얼굴을 마주 보게 되었다.     

 

  한 분은 한살이 많고, 두 사람은 동갑내기로 여섯 살 아래였는데 술 마시는 것도 비슷하고, 사는 형편도 비슷하고 취미도 비슷하여 술 몇 잔에 서열이 정해지고 바로 형님, 동생으로 호칭하게 되었다. 참으로 이상하고도 신기한 일이었다. 서울 하늘 아래 전혀 무관했던 사람들끼리 강아지가 매개체가 되어 갑자기 오랜 기간 알던 친구와 같은 사이가 된 것이다. 그 한 번의 만남이 처음이자 끝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 자리에서 날 잡아 운동하러 가자고 약속이 되어 이어졌고, 이후 수시로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강아지를 키울 때 고민 중의 하나가 오래 집을 비울 때인데, 여차할 때 맡길 든든한 이웃이 있음은 큰 힘이 된다. 남들은 강아지 호텔(?)에 맡기면 되지,라고 쉽게 말하지만, 언젠가 한 번 이용해 보고는 다시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들은 오로지 자기를 돌봐주는 가족만을 보며 살아가는데, 며칠이지만 떼어 놓으면 버림받았다는 아픔과 충격을 받을 것이다. 여행하면서도 그 녀석이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아파 서둘러 짐을 쌌던 기억이 있다.     


  이태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이웃들이 일주일간 우리 강아지를 집에 데려가 돌봐주었다. 걱정이 좀 되었으나, 이웃은 이미 친숙한 얼굴이고 게다가 제 친구가 있으니 전혀 심적 동요가 없이 잘 지냈던 것 같았다. 오히려 상을 치르고 녀석을 데려온 뒤에도 한참 동안은 산책할 때마다 그 집으로 들어가려고 해서 내심 좀 섭섭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집을 오래 비울 일이 있으면, 서로 그 집 강아지를 데려와 며칠이고 돌봐주는 것은 맺은 인연을 따라온 행운이다.     

 

  그러다 아쉽게도 연장자인 한 분은 고향 찾아 부산으로 옮겨갔지만, 아내들은 아내들끼리,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일 년에 한두 번 중간쯤에서 만나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먹거리가 많이 생기거나 선물이 들어오면 자주 나누어 먹는다. 시골에 가서 친척들이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듬뿍 주면 아내는 ’나눔 해야지‘하며 나누어 먹는 설렘으로 과하게 얻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쩌다 아내가 며칠을 집을 비우게 되면, 아내들끼리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그 소식은 또 남편들에게 전해진다. 특히 주로 집에 있는 나를 위해 동생들이 전화를 준다, ’형님, 혼자 밥 먹기 적적할 텐데, 소주나 한잔하시죠. ‘하고.     

 

  강아지들은 모두 예닐곱 살로 비슷한 나이다. 무탈하게 지내도 길어야 십 년이 녀석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언젠가 올 그날이 되면 하나둘, 슬픔 속에서 강아지의 가슴 줄을 놓겠지만, 녀석들이 맺어준 ’강아지 아빠 모임‘이라고 부르는 이 인연의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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