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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Dec 19. 2022

결혼기념일

오래된 결혼기념일에 쓴 글을 끄집어 내봅니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의 주인공들의 애틋함에서 깨어나 버린 지금에….


어제는 결혼기념일이었다.

     

그저께 아내와 몇 주년인가 손을 꼽다가 19라는 숫자에 멈추자 둘 다 화들짝 놀랐다.

아내 왈…. “벌써!!!. 아이구 징하다, 징해!”

받아치기를 “내하고 사는 게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세월 가는 것도 몰랐냐?”

     

일부인지 대다수의 남자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남녀가 평등하다면서 왜 결혼기념일은 왜 남자들이 아내에게 뭔가를 해줘야 하고, 

또 아내들은 왜 그것을 바라는지 투덜거리는 부류에 끼는 사람이다.

더구나 그런 불평을 하면서 뭐 여태껏 선물 하나 변변하게 해 본 적도 없는, 

더 악질 남편 축에 든다고 할까?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합치면 대략 서른다섯 번의 기념일이 있었으나,

대부분 간단한 외식이나, 일이 만 원짜리 장미 한 다발과 멋쩍은 웃음으로 대신했고,

선물이라고 사 본 것은 두어 번이나 될까 모르겠다.

그나마도 없는 용돈을 아끼느라, 할 때도 변변치 않은 것으로 준비하니,

아내도 겉으로는 좋아라고 하나, 만족하는 눈치는 늘 아니었다.

      

그저께 저녁쯤 전화가 왔다. 카드사였다.

“고객님 결혼기념일을 축하합니다. 이벤트…. 사모님, 목걸이…. 6개월 할부, 어쩌고 저쩌고….”

관심도 없고, 원래 전화로 상품 사는 것에 믿음이 쉽게 가지 않는지라,

건성으로 들으면서도, 하도 열심히 이야기하기에 냉정하게 끊지 못하면서, 

빨리 전화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한 달에 소주 한 잔 덜먹으면 된다는 말에,

또 올해 큰 병 치르면서 안쓰러웠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안 해본 짓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벌써 반도 더 기울고 있었다.

     

결국은 맘에 안 들면 반품도 가능하다는 말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신혼 초에 선물을 했을 때도, 나의 안목이 영 아내의 눈높이를 맞추지를 못하였기에,

맘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면서도, 맘에 들지 않으면 반품하겠지 했다.

     

다음 날 집에 가니 벌써 배달된 목걸이를 떡하니 걸고는 기분 좋게 있더라만, 결국에 나오는 한마디.

“바꾸면 안 돼? 별로 맘에 안 든다. “ 

“그래? 그러면 반품하소.”

자기가 백화점에 가서 비슷한 가격에 맘에 드는 것을 고를 테니 계산만 하란다.

할부로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그리하라 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목걸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보다, 

내 가벼운 주머니를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이 깊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번 주말쯤에, 백화점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아주 값싼 것 하나를 골라서, 

나에게 흔들며 웃으리라는 것을.

     

또한 나는 안다.

그리하여 나를 또 못난 남편으로 만들리라는 것을.

올해 봄, 병을 얻어 나의 가슴을 무너지게 했던 아내이기에,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생각하지만,

나는 그러한 아내의 제안에 또 못 이기는 척 끌려갈 것임을.

      

꽃다운 나이에 내게 와서 고생하다가, 

병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무너졌다.

다행히 수술 후 괜찮은 상태가 이어지니, 

그때 받은 충격과 영원히 아내만 바라보고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은 벌써 사라져 버리고,

먼저 투정 부리고 티격태격하며. 그 전보다도 더 평상으로 돌아가 버렸다.

     

핑계가 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아내는 또다시 한쪽에 밀려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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