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틀무렵 Feb 03. 2023

마모인(印)과 책임

조직과 책임감은 같은 말이다

 조직은 혼자가 아닌 구성원들이 모여 책임의 분담을 통해 일과 목표가 이루어지는 체계이다. 따라서 각자의 책임이 매우 중요하다.

      

 리더는 누구나 잔소리 같이 반복하는 자신만의 레퍼토리 몇 개쯤은 가지고 있다. 나의 레퍼토리 중 하나는, 어디로 발령이 나든 오 분 안에 짐 싸서 떠날 수 있도록 평소 주변을 정리하며 지내라는 거였다. 그날에 생성되는 각종 종이 보고서는 꼭 필요한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는 세절하여 없애고, 다음 날을 준비하는 것이 어느 상사로부터 배운 오랜 나의 습관이었다. 종이 보고서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부의 직원들은 가져오지 말라고 해도 부득부득 종이 보고서를 들고 오기에 어쩔 수 없이 쌓이는 경우가 있다. 종이 보고서를 들이밀어야 상사가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거기에는 상사가 꼰대일 것이다,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회사를 떠나라는 통보를 언제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즈음이 되면 주변을 정리하곤 했다. 그것은 지난 과정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었고, 혹 떠나라는 통보를 받지 아니하면 내년에 할 일들을 구상하는 시간임으로 허허롭거나 서글픈 시간은 아니었다.

     

 이태 전, 이맘때도 떠나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드디어 떠날 때가 되었음은 생각하고 있었다. 틈틈이 서랍 속을 정리하다가 직장생활의 결과로 남은 소박한 몇 가지 물건 중에 발견한 것이 있었다. 원래 내 것이었고 오래 같이 있었으니 발견이라는 말이 가당한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오랜만에 보게 되었으니 발견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마모인’이라고 불렀던 도장이었다. 사회 초년병시절, 첫 책상에 앉자마자 ‘마모인’을 준비라는 회사의 지시에 근처 도장방에서 삼천 원인가를 주고 새긴 까만색 도장 하나, 그리고 얼마간 세월이 지나고 티크 목재 재질로 장만한 또 하나, 두 개의 도장이 가죽집에 잠자고 있었다. 생소하게 보이는 그것은 아직도 글자 사이사이에 빨간 인주를 머금고 있는 채였다.

     

 ‘마모인’이라는 것은 지금 세대들은 모를 것이다. 나도 그것을 사용한 시기는, 직장생활을 지질시대에 비하자면 고생대 캄브리아기 정도의 아득한 과거이다. 그것을 발견한 순간, 그런데 ‘마모인’이 무슨 뜻일까,라는 궁금증이 먼저 일어났다. 그것을 분신처럼 사용할 때도 아무 생각 없이 뜻도 모르고 그렇게 불렀는데 왜 그때가 아닌 지금에야 궁금함이 일어났었는지? ‘궁금하면 오백 원’이 아니고 인터넷에 답이 있다.

      

 딱 부러지는 정설은 없지만, 단면이 콩 같다고 해서 일본어 ‘마매(まめ, 콩)’와 도장(印)의 조합어로 ‘마매인’이 와전되어 ‘마모인’으로 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다.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콩 도장’이라고나 할까. 마모인은 한쪽 면에는 이름 두 글자가, 갈수록 가늘어지는 뒤쪽 면에는 성씨가 새겨있는 기다란 도장이다. 문서를 기안하거나 결재할 때는 이름 쪽의 도장을 찍고, 오타나 수정이 필요한 곳에는 빨간 줄을 긋고 녹두 알 크기만 한 뒤쪽의 성이 새겨진 쪽을 찍는다. 그 후 새로운 회사로 이직 후에는 서명(Sign)이나 PC에서 클릭으로 모든 것을 처리했기에, 서랍 한구석에서 잠자고 있었다. 이직한 회사는 그런 방면에 앞서가는 회사여서 좀 고리타분해 보이는 인장 사용을 일찍 없앴으나, 아마 다른 회사는 90년대 중반까지는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은행이나 공무원들은 쓰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요즘 은행에 직접 갈 일이 거의 없어 잘 모르겠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은행에 갔을 때 유심히 보면, 창구에 앉은 직원들 뒤에서 마모인 하나만 달랑 들고 빈 책상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이 늘 있었다. 무얼 하는지 유심히 보면 창구 직원이 전표 같은 것을 주면 도장만 찍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남이 보기에는 도장만 찍어 주고 빈둥거리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그는 찍는 도장으로 인해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다.

  

 과장, 부장이라는 직책이 있었던 시절이니 아주 오래전이다. 큰 프로젝트를 기안하여 관련된 몇 개 본부의 조직장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는데 어느 한 분은 몇 번을 찾아가도 미적거리고 결재를 해주지 않더니, 마지막에야 ‘나는 안 본 거다’라는 말을 하며 마지못해 도장을 눌러주었다. 봐놓고도 안 본 것으로 하겠다니, 논리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 이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한참을 갸웃거렸다. 지금도 그 의미를 정확히 헤아리지는 못하겠다. 얼마 전 어느 이슈에 ‘나는 안 본 걸로 할게’라고 했다는 고위 공무원도 있다니 그런 사람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이런 유형은 책임을 회피하는 부류 중에서도 가장 하류의 전형이다.

      

 조직 생활을 관통하는 여러 덕목 중에 ‘책임’이라는 단어는 가장 상위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사람을 평할 때, ‘책임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은 절대 받아서는 안 되는 평판이다.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 사람, 위험 뒤에 숨지 않는 사람, 매사에 앞서 나서는 사람, 문제가 생겼을 때 나의 잘못이라고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특성이다. 이런 사람이 많은 조직은 거창하게 무엇을 하지 않아도 반드시 단합되고 갓 잡은 생선같이 파닥거리는 활력이 충만한 조직이 된다.

     

 ‘마모인’은 단순한 도장이 아니라, 찍을 때마다 ‘나의 책임’이 영원히 거기에 새겨진 것이었다. 인주를 묻힌 도장에 입김을 호호 불고 꾹 누를 때면 왠지 서명보다는 성취감이 더 느껴졌고, 책임이라는 의식을 더 강하게 들게 했던 마모인….

     

 그때의 마모인을 다시는 쓸 일이 없겠지만, 지금 내 책상 옆에서 ‘책임’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어디에서나, 무슨 일을 하거나 책임을 다하라고.


작가의 이전글 만 개의 도시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