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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y 05. 2022

벽(癖) : 미쳐야 산다

한참 전에 읽은 책 중에서 마음에 와닿은 글이 있었다.  ()’

조선말 시대의 기인, 협객 등,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분들의 삶을 기록한, ‘알아주지 않은 삶’이라는 책이다. 하긴 이름 석자 남기지 못한 民草들이 대부분인데,  그래도 당대의 학자들이 그분들의 삶을 기록하여 남겼으니, ‘알아주지 않은 삶’이라는 것은 조금 역설적이다. 대부분 평민이거나 서얼 출신이거나 하였지만,  나름대로의 기상과 의지로 자신의 삶을 거침없이, 깊이 있게 살았던 분들이다.     


그중, 평생을 온 조선의 山만 찾아다니신 분의 삶도 기록되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같은 등산복이나, 등산 장구나, 등산화도 없는 시절에 백두산, 지리산을 오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짚신에 도포자락, 괴나리봇짐. 생각만 해도 숨이 차오르고 덥고 후끈한 기운이 올라오는 듯하다. 당시에 백두산을 오른다는 것은, 요즘에 최소한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분의 삶을 평하면서, 박제가는 아래와 같이 평을 하고 있다.     


   ‘벽(癖)이 없는 사람은 버림받은 자이다.

   벽이란 글자는 ’질병과 치우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편벽된 삶은 병을 앓는다는 뜻이다.

   벽이 편벽된 병을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고독하게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전문적 기예를 익히는 자는 오직 벽(癖)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

                                - 박제가 백화보서(百花譜序)    

 

박제가 선생은, 벌써 이백여 년 전에,  

지금의 세계 최고의 CEO들이 부르짖고 있는 그런 삶의 방식에 대해 통찰하였다.


어디든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방랑벽(放浪癖),

천하의 산천 경계를 찾아다니는 산수벽(山水癖),

삼국지에도, ’ 두예‘란 인물이 춘추좌씨전을 평생 몰두하여 읽었다 하여 ‘좌전벽’(左傳癖)이라고 별칭 했다고 한다.     


벽(癖)이라는 것은 어느 한쪽에 집중, 집착하는 병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이 벽(癖)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는, ‘매니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매니아는 조금 어감이 약하고, 또 아마추어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좀 더 몰입하고 강렬한 어감을 가진 단어는 오히려 경상도 쪽 사투리에 유사한 단어가 있을까 한다.


경상도 말에 어느 한 군데 몰입하는 사람을 일컫는 ‘미친개이’라는 말이 있는데 ‘벽’을 가진 사람과 동일한 의미인 것 같고, 부산 쪽에서는 ‘하고재비’라는 말이 있는데, 그도 비슷할 동 싶다. 뭐든지 하고 싶어 한다고 하여 ‘하고재비’라고 하는 것 같은데,  오래전 부산에 살 때 부산사람들로부터 수시로 들을 수 있었던 말이었다.  예를 들면 ‘그 사람 바다낚시에 하고재비야!’와 같은.     


평범한 삶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어디 한 가지에 미쳐서 전문가가 되어야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으로 점점 나아가는 지금의 세상.  나는 왜 어디 하나에 미치지 못하고, 이렇게 세월만 헛되이 보냈는지.     


그러나 아흔에 등단한 유명한 화가도 있었고, 일흔, 여든에 예술가로 피어나는 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분등 우리 주변에도 나이를 잊고 새로운 것에 몰입하여 개척하는 그런 분들이 자주 보인다.


따라서 아직도 늦은 나이가 아니라고 위로하면서,  어디 한 가지에 ‘미쳐 봐야겠다.’ (202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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