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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y 07. 2022

운(運), 운명(運命)

사람에게 운명이나,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일까?

또는 날에 따라 운이나, 재수 같은 것이 작용되는 어떤 기운이 있는 것일까?

젊은 시절의 어느 날, 정말 재수 없고 기분 나쁜 일만 연속으로 일어나는 날이 있었다.


그날은 MT를 가는 날이었다.

집합지는 기차역이었고, 거기서 모여 완행열차를 단체로 타고, 인근 교외로 가는 여정이었다.

그때 우리 과에 고등학교는 일 년 선배이나, 재수한 관계로 나와 같이 다니던 선배가 있었다.

나는 학교 서쪽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고, 그 선배는 동쪽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 아침에 내가

선배 하숙집을 가서 같이 기차역에 가자고 했다.     


그래서, 학교를 가로질러 동쪽에 있는 선배 집을 가고자, 학교 중간쯤 어느 건물 앞을 지나갈 때였다. 

머리 위로 한 4~5층 높이에서 창문이 열리는 드르륵 소리가 들리더니, ‘캬~아악“하고 가래침 모으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쳐다보는데, 그 누렇고, 찐득한 덩어리가 여지없이 내 얼굴 눈 부근에 철썩 떨어지는데, 불쾌와 당황과 분노가 겹쳤지만, 건물 위로 쫓아갈 생각도 못하고 그것을 내 얼굴에서 없애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쫓아올라가 봐야 도망가고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우쒸재수 없네)


하여튼 그래도 목적지까지 잘 가서 MT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피 끓은 젊은 시절인데 왜 그렇게 일찍 행사가 끝났는지 알 수없지만, 이상하게도 일찍 마치고 오후 4~5시쯤 돌아왔는데, 그 선배가 술에 거의 실신이 되어 인사불성이라, 내가 집까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다. 학생 시절에 타본 적이 없는 택시를 큰 맘먹고 잡았다.  

그런데 이 선배,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연신 괴로움으로 몸을 꼬더니만, 우웩 하고 택시 안에서 토악질을 해 버리는 것이었다...

운전사의 우락부락한 표정과 나의 낭패. 사정하며 하숙집까지 와서 운전기사에게 백배사죄하고, 택시비에 더하여 세차비 조로 그 당시로는 거금인 오천 원을 더 주고야 그 난감한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일반미 한말이 만 이천 원, 정부미가 칠천 원, 그 중간쯤 되는 통일벼인가 무슨 쌀인가 하는 내가 사 먹는 쌀이 팔천 원 정도였으니, 상당히 큰돈이었다. (우쒸! 재수 없네)     


하숙방에 간신히 선배를 눕혀놓고 터덜터덜 패잔병같이 돌아와 자취방에 돌아와 누웠다. 저녁이 되자 밥은 먹어야 하는데, 그날따라 연이어 재수 없는 일만 당하고 보니, 밥해먹기도 싫고 하여 큰마음먹고, 중국집에 가서 짬뽕으로 때우기로 했다. 입고 갔던 청바지 주머니에 남았던 돈을 찾았다..

분명히 주머니에는 오천 원지 폐가 한 장 더 있을 터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아마도 택시에서 내린 후 경황이 없는 중에  빠졌다고 밖에는 달리 잃을 일이 없었다. (우쒸! 재수 없네)     


그래도 마음먹었으니, 동전을 모아 짬뽕을 먹으러 갔었다. 사오백 원 정도가 짬뽕 한 그릇 값이었으리라.

무엇을 먹어도 평상시 내가 해 먹는 자취 밥보다 훨씬 맛있었던 것은 당연했으며, 식당에 켜져 있던 TV를 보면서 느긋하게 면발을 건져 먹고, 마지막으로 국물을 마시려고 그릇을 들었을 때다.

국물 안에 해물도 아니고 채소도 아니고, 고기가 부족한지, 배가 볼록한, 어른 엄지손가락만 한 나방 한 마리가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순진한 나는 식당 주인에게 항의할 생각도 못하고, 조용히 젓가락을 놓고 계산하고 집에 왔다. 

(우쒸! 재수 없네)     


하루에만 연속으로 일어나는 재수 없고 불쾌한 일들.

하루 동안에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일생에 걸친 운명을 비유하기는 뭣하다마는 이 기억을 떠올리면, 진짜 재수나, 운 또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작년 여름에 아이가 이과를 가나, 문과를 가야 하나 아내가 고민하더니만, 어느 유명한 사주명리 공부한 사람이 족집게라고 한다면서 한번 보러 가자고 한다. 나는 아직 그런 데를 간다는 것에 영 거부반응이 있어, 운전만 하고 밖에서 기다렸고, 하여튼 이야기는 들은 모양이던데, 결과는 내 생각하고 일치한 것으로 보아 보니 공부는 제대로 하신 분인 듯하였다.(?)     


상담이 끝나고는 그분이 이문열의 “선택”이라는 소설을 읽어보길 권하였다고 하여, 뭐가 큰 뜻이 있는 것 같아 얼른 한 권사서 주었더니 지겹다고 읽다가 던져 놓은 것을 내가 읽어보니, 이문열 작가의 재령 이씨 가문의, “정부인 안동 장씨“이야기였다.     


왜 그 책을 권했는지는 다소 의아했지만, 책 내용을 참고하여 짧은 소견으로 헤아려보자면,     


사람의 운명이나, 길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노력으로 헤쳐나가는 것이고,

또 요즘 부모들이 너무 인위적으로 자식 교육에 매달리고 하는데, 

가르침이나, 가정교육이 잘 되면 아이들은 절로 훌륭하게 자란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일독(一讀)을 권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의 운명의 길은 어디에 있는 걸까? (2005.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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