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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y 08. 2022

아직도 유랑(流浪)하는 일본어

일제강점기를 거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상에 잔존하는 일본어들이 무수히 많았다. 내가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벤또’, ’다꾸앙’, ’와루바시’등 일상에서 수많은 일본어가 버젓이 사용되다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우리말로 사용하자는 운동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이제는 ‘세력권, 권역’으로 사용 시 뒷골목의 음습하고 강렬한 분위기가 표현되지 않는다는 궤변으로 줄기차게 사용되고 있는 ‘나와바리’등의 극소수의 말 외에는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짧은 생각임을 두 가지 사례가 알려주었다.


어느 날, 깻잎 좀 사 오라는 아내의 지엄한 분부로 운동삼아 한 이십 분 정도 걸어서, 한때 살았던 동네에 제법 규모가 있는 마트를 갔다. 은퇴 초년생으로 식품의 종류와 물가 그리고 어느 정도가 식품별 적절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감이 없는 나는, 처음 보는 종류의 깻잎이 진열되어있는 매대 앞에서 당황했는데, 그럴 것이, 내가 늘 보아오던 깻잎을 여러 장을 포개서 묶음으로 하여 높은 가격을 표시한 쪽이 있었고, 그 옆에는 잎사귀에 줄기도 일부 섞인 채로 비닐봉지에 꽤 많은 양이 담아진 저렴한 가격이 붙은 쪽이 있었다. 어릴 적 텃밭에서 키우던 들깨를 늘 보면서 자랐지만, 도회지의 대형마트에서 그런 상태로 파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매대에는 ‘바라 깻잎’이라는 명패가 붙어있었다.     


‘바라 깻잎’이란 단어는 난생처음 보는 단어였고, 어느 것을 사야 할지를 몰라 점원에게 물어서 양쪽의 용도를 대략 들은 후, 평소 늘 보아오던 한 장씩 정리되어 포개진 높은 가격의 깻잎을 사 와서 아내에게 건네주니 별다른 시비가 없는 것으로 보아 심부름은 제대로 한 모양인데, 바라 깻잎’의 뜻을 물었으나 아내도 모른다 한다.     


바라 깻잎'..

은퇴 후 무위도식의 죄의식에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증을 해소하기 위한 일상의 하나로, 상시로 책을 읽기로 하였는데, 박완서 님의 소설을 읽고는 내가 모르는 우리말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대해, 나의 빈약한 어휘력에 스스로 통탄해 마지않고 있던 시기여서, ‘바라’라는 단어도 나의 무지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순수 우리말이 아닐까 하였다. 그러나 사전을 뒤졌으나 보이지 않았고, 세상에 떠도는 속어나 특정 세대에서만 사용되는 생소한 단어 등 세상의 모든 정보가 있는 인터넷 포탈에도 검색이 되지 않았다.       


   - 참고로 박완서 님의 소설을 읽다가 내게는 너무나 생소하여 충격을 받은 우리말들은 다음과 같다. 

     “미양하다, 징건하다, 내리닫이, 추비하다, 엉구다, 천격스럽다, 소증, 반지빠르다, 괴불, 사매질,   

      약대, 구메구메, 흐늑흐늑, 진진하다, 야비다리, 약비나다, 모갯돈, 츱츱하다”등등..


나름 호기심이 많고, 궁금하면 파고드는 성격이라 이틀 동안 생각이 날 때마다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혹 일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 사전을 찾아보니, 역시나 일본어였다. 아니 추정되었다.

     - ばら[바라] : 낱개잔돈푼돈

낱개. 푼돈의 일본말로서, 약간 품질이 떨어지는 낱개를 모아서 판다고 그렇게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추측이지만 확신이 들었다. 아내에게 내가 찾은 ‘바라’의 뜻을 이야기해주니 마트에서는

바라 깻잎뿐 아니라 포도알 떨어진 것을 모아 파는 것을 '바라 포도라고 한다며 자주 사용하듯이 이야기한다.


이제 일본어의 잔재는 모두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렇게들 사용하고 있구나. 특히 마트 등에서 낱개로 팔면서 명칭을 붙인 것은 일본어 순화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친 이후인 것 같은데, 그 이후 새로이 일본어로 명칭한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푼 깻잎’, ‘낱알 포도’등 우리말도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할 것이다.



또 하나의 경우는, 

어느 날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았는데, 방송화면을 캡처한 사진에 다음과 같은 자막이 붙어있었다.

 ‘그냥 아들이랑 왔다리갔다리 놀러 다녔어.’

‘왔다리갔다리’는 평소 우리가 너무나 자주 사용하는 말인데, 우리말 ‘왔,갔’에 ‘(하)거나’의 뜻을 가진 일본어 ‘たり(타리)’가 붙은 말이다. 그래서 ‘왔다리갔다리’는 ‘오고 가거나’, 즉, 왔다 갔다의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일본어 잔재로서 사용하지 않아야 할 말인 것만은 분명하다. 출연자는 상투적으로 그렇게 말하더라도 방송사가 자막에는 정정하여 정확한 우리말로 표기되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작가가 그것을 몰랐을까?     



언어는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 생성되고, 타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아가며 변화되며 이어지고, 발전하기도 하고 사멸되기도 한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청나라의 만주어는 이제 사용하는 인구가 수십 명이라고 하며 거의 사멸 단계의 언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언어 간의 영향과 침범도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각자의 국가나 문화가 독립, 호혜적으로 유지될 때에 관용이 되는 것이며, 강압과 강제에 의한 것은 배제되어야 마땅할 것이며, 더구나 자신의 언어로 충분히 표기가 가능함에도 남의 언어를 사용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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