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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y 13. 2022

'용각산’ 한통 값에서 생각해본 공정(公正)의 의미

공정(公正)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어 버린 요즘이다. 공정, 공평, 평등 등 그 사전적 의미는 대동소이한데, 왜 굳이 공정이라는 단어만을 앞에 세우는 것일까? 이는 모두가 똑같이 나누거나,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완전한 정의가 아니라, 노력과 가치에 따른 차등의 부여가 더 정의롭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오랜 시간 국민들에게 사랑받은 약이 있다면 활명수이고(젊은이들은 잘 모르려나?), 활명수만큼은 안되더라도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온 약품이 “OOO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라는 카피로 유명해진 ’ 용각산’도 오랜 시간 우리 곁에 있는 약 중에 하나로 생각한다.     


오랜 시간을 흡연자로 살아온 나는 특히 겨울철에 한번 정도는, 목이 아파오면서 심한 몸살감기로 일주일 정도를 꼼짝없이 앓곤 했는데 그 경험이 너무 싫어, 목이 간질거리는 기미가 보이면 퍼뜩 용각산 한 숟가락을 털어놓고 삼키지 않은 채 오래 기관지에 머물게 하는 나름의 비방을 터득하여 감기가 오는 것을 방어하곤 했는데 꽤 효과가 있었는 듯하다. 최근 몇 년간 심한 목 통증이 수반되는 감기는 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몇 달째 금연 중인 것은 참고로만 이야기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용각산’은 꼭 노인들의 파스나 우황청심환처럼 상비약으로 주변에 두고 생활했는데, 그 약값은 결코 싼 것은 아니었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 후 처음 약국에 가니 만천 원을 지불하고 손에 쥐었는데, 어느 날 고향에 갔다가 약국이 보이길래 마침 바닥이 보일락 말락 하던 용각산이 생각나서 한통을 샀더니 구천 원이었다. 꽤 횡재한 느낌이 들어 그 이후에는 고향에 갔을 때면 그 약국을 들어 두어 번 사 오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막 팬데믹으로 퍼져나갈 즈음, 마스크를 사러 동네 약국에 갔다가 마침 그 약국은 마스크가 소진되어 바로 옆 약국에 가게 된 김에 용각산도 사게 되었는데, 그 약국은 고향의 약국과 같은 구천 원을 받는 것이었다. 좀 의아했지만 싼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종로를 가게 되었다. 회사를 은퇴하고는 운동과 구경 및 사색 겸, 자주 옛 서울 시가지를 걸어서 다녔는데, 그날은 광장시장을 가는 길에, 길가에 대형약국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 여기가 라디오 광고도 자주 하는 거긴 가하며, 어느 약국을 들어갔더니 이건 깜짝 놀랄 가격인 칠천 원이었다.      


같은 약의 값이 만천 원, 구천 원, 칠천 원. 4개의 약국에서 3가지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이런 불합리가 있을까 하면서 걷는 내내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제약회사의 홍보맨도 아니고, 약사연합회의 대변인도 아니면서, 왜 이 불합리한 가격체계를 억지로 합리화시켜보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걷는 내내 생각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종로의 대형약국은 많은 약이 팔릴 것이고, 시골의 작은 약국은 일 년에 몇 통이 팔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 팔리는 양에서는 수십, 수백 배의 차이가 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약한 통 자체의 가치는 같을 것이나, 거기에 가치를 추가하는 물류비, 관리비, 인건비는 차이가 나지 않을까? 많이 팔리는 약국은 추가되는 비용이 분산되어 약 한통에 추가되는 비용이 적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약국은 많을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대형약국에 만통을 배달해도 차량 1대, 시골에 10통을 배달해도 차량 1대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구매자 입장에서 보면 주거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대형약국에서 싸게 약을 구입하려면 시간과 비용(교통비)이 추가 발생한다. 동네 약국에 가면 그러한 시간과 비용을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임으로 전체적으로는 비슷하지 않을까? 이것이 더 공정한 가격이 아닐까?      

서울시내에서의 생수 한 병과 사하라 사막에서의 생수 한 병의 가치가 달라지듯이.   

 

사회나 회사나 인간이 만든 조직에서도 동일한 것이다.

모두가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를 평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한 시간에 10개의 물건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12개를 만드는데 똑같은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이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가 되는 것일까? 12개를 만드는 사람은 보상이 20%의 더 많아야 공정한 것이 아닐까?    

조건이 없을 때 같은 것이 공평이라면조건이 다를 때 그에 합당한 차등을 부여하는 것이 공정일 것이다.    

 

다만, 우리 동네에 있는 두 개의 약국에서의 가격차이는 아직도 의문으로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음에, 공정에 대한 나의 생각이 100% 맞는다고 확신이 아직은 들지 않음도 고백해야겠다.(202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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